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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을 쏟아낸 후의 감정

쏟아버린 화를 주워 담을 순 없지만 치우는 일은 가능하다 ②

by 앤나우

아이에게 와르르 화를 내고 대부분 첫 번째로 찾아오는 감정은 '후회'이다.

그냥 좀 참을걸, 한 번 더 꾹 참고 견디고 이야기할걸.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가사처럼 내 안에 감정이란 것도 하나가 아니기에 쏟아내고 "버럭"했다고 순식간에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 찾아보면 희한하게도 그래도 화를 내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다.

욱아 일기를 쓰면서 돌아보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쓰는 건데 자꾸 합리화를 시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같지만 사실은 '버럭 하지 않고도 이런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좀 적어보고 싶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과정이 없으니(T_T), 버럭 한 후에라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감정을 다독였던 경험을 적어보려 한다.



◆ 그냥 좀 참을걸

하는 마음 한편에 이런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대부분은 그냥 좀 참았어야 돼, 하고 별 일 아닌 거에 감정적으로 앞섰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도 화내길 잘했어


감정을 전부 쏟아내고 표현하기 힘든 세상이다. 이 감정이 '화'가 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매사 서툴고 부족한 어른이기에 어떤 쌓여있는 감정은 '화'로 터져 나와야 이야기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도 있다.

오늘은 그 물꼬를 튼 '욱아일기' 이야기다.








전에 쓴 욱아일기 ⑪화와 연결되는 날이다.

욱아일기 ⑪화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


신랑은 뺀질거리고 반복해서 스스로 숙제나 학습을 이어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화를 냈고 그 화는 드디어 폭발했다. 어디서 들고 온 효자손은 덜덜 떨렸지만 차마 아이에게 바로 매질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키도 덩치도 커버린 아이를 어떻게 때리지도 못하고 평소에 아빠의 화난 모습을 거의 본 적 없는 아이는 잔뜩 쫄아서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두 사람의 대치가 이어졌는데 둘 다 낯설고 어색하고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몇 번 매를 고쳐 잡았다,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 신랑이 아이에게 씩씩 거리며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나가! 당장 나가!
그렇게 부모 말을 다 안 듣고 네 마음대로 할 거면
그냥 나가!

여기서 나가!





나가라는 말 뿐이었고 그 과정에서 버티는 아이 옷의 멱살을 몇 번 움켜쥔 것 같았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 내가 화를 내고 버럭 한 방식과 신랑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주로 나의 '다다다'로 이어지는 잔소리와 사자후처럼 길길이 날뛰고 소리치는 방법과 달리 신랑은 행동으로 아이를 제압해서 겁을 먹게 했다.



엉거주춤, 여기저기 몸을 피해서 아빠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이미 아빠의 거센 손을 뿌리칠 만큼 아이는 몸도 자라고 힘도 세진게 분명했다.


"아, 나간다고요, 그냥 나갈 테니까 잡지 말고 놔요!"


나간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 아이에게도 사춘기, 그분이 오신 게 맞구나, 이런 생각이 바로 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생각하고 뭔가를 사과하고 행동을 고치기 전에 폭력과 버럭으로 나온 아빠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아이의 행동을 반성하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건 분명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설득과 시간임을 잘 안다. '버럭'역시 이런 역효과를 자아내서 '대놓고 가출'이란 결과를 내는구나, 기가 막혔다. 아이가 가봤자, 현관 앞에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반항적으로 말하고 당당하게 나간 적도 없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대체 얼마큼을 더 기다리고 몇 번을 더 설득하고 반복해서 말해줘야 하는 걸까? 그냥 해야 할 일을 딱딱 맞춰서 조금씩이라도 했더라면 이렇게 서로 화를 내고 찡그린 일이었나, 휴우. 다시 심호흡을 시작했다.


삐리릭, 탁!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도망치듯 쾅!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 무렵이었기에 밖은 깜깜했고 크룩스 샌들을 신고 얇은 옷차림에 후다닥 나간 아이가 걱정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어떤 대처할 새도 없이 아이가 떠난 집은 고요해졌다.

하지만 아이가 나가자마자 신랑의 행동에 웃음이 터졌는데, 현관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아이의 행동을 쫒고 있었다. 키를 낮춰 구부정한 자세로 아이를 보는 모습을 보고 나니, 아휴, 나는 아이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캄캄한 어둠을 무서워하고 이렇게 해 질 녘엔 학원이 끝나도 무서워서 데리러 와달라는 덩치만 큰 아들, 그런 아이기에 나는 (신랑 · 아이) 누구에게도 '어떻다, 뭘 잘했다, 잘못했다, 이게 뭔 일이냐' 할 것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나도 당황스럽고 답답한 심경, 내가 나가고픈 심경이었다.


현관문 바로 앞에서 추운지 팔을 비비며 서있는 아이에게 긴 팔 재킷을 입혀주고 이제 들어가자고 했다. 아이는 계단 위로 몇 걸음 더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하다, 들어가기 싫다는 표시로 고개를 몇 번 저었다. 지켜보다가 혼자 들어와서 이번엔 내가 문틈으로 아이를 보니, 캄캄한 밖이 무서운지 센서등을 자꾸만 다시 켜려고 몸을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밖으로 나가서 좀 더 걷고 이야기를 할까, 데리고 그냥 들어올까 나도 오 분 정도 더 고민을 하다가 꽃샘추위가 꽤나 매서웠기에, 결국 문을 열고 이젠 들어가자고 아이 어깨를 붙잡았다.

못 이기는 척, 아빠한테 화났다는 걸 말하면서도 결국 아이는 현관까지 들어왔다.



너무 당황하고 놀라면 눈물조차 안 난다고 했던가. 평소에도 겁이 많고 눈물이 많은 아이인데 얼굴엔 운 흔적도 없이 잠잠했다. 이제 스스로 뭔가를 좀 할 준비가 됐는지 묻고, 아이를 방으로 데려와서 앉힌 뒤 행동을 지켜봤다.


다시 교과서를 펴고 숙제를 확인하더니 아이는 말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했다. 하나가 완성되자 나에게 그걸 내밀어서 틀린 부분이나 이상한 게 없냐고도 물었던 것 같다. 이렇게 금방 할 수도 있는 일이었구나, 그런데 왜 안 했냐고,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아이가 겪은 '충격 효과'뒤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 내가 분노의 한가운데선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나고 이성이 마비되지만 누군가의 화나는 상황을 마주하고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조금 더 침착해지기도 하는구나. 그게 화나는 행동을 한 내 아이임에도 그전과 달리 신랑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한 발 더 떨어져서 보니 둘 다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했다.



숙제와 해야 할 밀린 일주일치 학습을 마치고 아이는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쭈뼛쭈뼛, 주변 공기와도 어색하고 화합되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결국은 이전에 질질 끌었던 시간과 실랑이가 무색하게 후딱 '해치운'느낌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시작부터 밀렸지만, 그 과정이 엉망진창, 서로 감정이 잔뜩 상하기도 했지만 밀린 걸 하느라고 수고했다고 어깨를 도닥여줬다. 잘 준비를 할 즘에 신랑이 조용히 아이를 불렀다.


-여기로 앉아봐,


식탁으로 아이를 이끈 신랑은 아이를 조용히 부르고 물을 한 잔 따라줬다.




아빠가 아까 그렇게 멱살 잡고 널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해서 많이 놀랐지? 아빠가 속상하고 화가 많이 났어. 그런데 네가 벌써 키가 이렇게나 크고 이제 곧 아빠 키도 따라잡을 텐데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할지도 막막하고 때리기가 싫어서 아빠가 그냥 화가 나서 무조건 나가라고만 했어. 여기 어디 아프거나 상처 난 데는 없어?

미안해. 미안하다, 아들.

좋은 방법으로 가르치고 이끌어줘야 하는데 아빠가 밖에서도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화가 계속 나더라고. 무엇보다 네 스스로 일인데도 당당하게 안 하고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는 것 같은 네 행동에 아빠는 화가 났어.




신랑의 음성은 침착하지만 떨리고 있었고 그제야 아이도 뚝뚝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했다.



거칠게 몰아붙이고, 다짜고짜 화부터 버럭 냈지만 그런 폭풍 같은 감정 뒤에, 솔직한 심경은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는 시간. 어쩌면 화를 내는 자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했던 '중요한' 과정은 나의 감정이 어떤 거였는지 들여다보고 그걸 (*가족끼리) 서로에게만큼은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쏟아버린 화를 주워 담을 순 없지만 치우는 일은 가능하다. 때로 어떤 감정은 화를 내야 터지고 조금 더 깊이 그 감정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슬프게도 이렇게 터져야만 '솔직한'감정을 나눌 수 있기도 한다. 그냥 피식피식 돌고 있는 압력밥솥 꼭지처럼 짜증이 들락 말락 한 감정은 그래도 전환이 가능하고 참아낸 뒤에 좀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밥이 다 됐을 때 '한 번에 터져 나오는 수증기'처럼 터지고 난 뒤에야 진짜를 돌아보게 하는 감정도 있다. 진짜 밥이 되기 위해 터지는 폭발이 있는 것처럼, 아이뿐 아니라 신랑과 나 역시 진솔한 감정을 나누는 시간이 참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다만, 이제는 표출하고 버럭 하는 감정의 수위는 조금 더 낮추고 사과대신 '왜 화가 나는지'먼저 성찰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로 다짐했다.


원래 가족끼린 이런 일 · 저런 일이 있다가도 다시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또 웃을 일이 생기면 속상한 일은 잊어버리고 덮어지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쏟아진 물이야말로 다시 주워 담기가 불가능하지만 쏟아버린 화는 솔직하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 사과하고 다시 감정을 만져주는 시간을 통해 주워 담기가 물보다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터진 후에 다시 치워가는 과정에 '진짜'가 숨어있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그날 이후부터 조금 밀리더라도 스스로 늦지 않게 숙제를 챙기고 따로 검토하지 않아도 계획표대로 할 일을 마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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