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걷기도 힘이 든데
불빛도 아닌 것이 비스듬 빛으로
자국눈이 밟힌다.
곱디고운 것이 모새처럼
갓돌 위를 걸어갈 때
어둠은 하나의 자국일 뿐이다.
그믐치 ; 음력 그믐에 내리는 눈 또는 비
자국눈 ; 발자국 날 정도로 적게 내린 눈
모새 ; 아주 잘고 고운 모래
갓돌 ; 성벽이나 돌담 위에 비를 맞지 않게 지붕처럼 덮은 돌
정월 그믐에 태어났다.
그래서 친숙하기만 하고 또 그 어둠이 짙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까지도 서 있어봤고, 그 어둠 속에서 나타날 때까지도 기다려 봤다.
그리고 자국눈이 내리는 날이면 서 있기보다는 걷는다.
저기 저 어둠 속에서 밝은 미소가 보일 때까지...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박목월 님의 산이 날 에워싸고 중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젊은 날의 나를 보며 바보처럼 한 숨을 쉬었다.
고민할 것 뭐 있으랴 그저 그 어둠을 더 어두운 밤 보다 밝게 살면 그만인데 한다.
나는 그믐날 에 태어났다.
눈썹달을 유난히 좋아하고 손톱 달을 유난히 좋아한다.
둘 다 같은 초승달인데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고 할지 몰라도 난 둘 다 좋다.
그리고 둘 다 다르다.
소녀의 미소를 닮은 눈썹달과 내 어머니의 짧은 손톱을 닮았기에 나는 둘 다 좋다.
그렇게 자국눈이 내리는 그믐치에는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