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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Apr 05. 2016

비 오는 날 흐느끼는 커피 향

밤꽃 향이 빗방울에 젖어 또로로 구르면

많이도 닮은 향기가 잔에 가득하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향긋함이

깊숙하게 파고드는 향으로

꽃내음처럼 진하기만 하다.


비 오는 날의 커피는 눈물이었다.

살포시 파문을 일으키는 흐느낌이

내리는 봄비처럼 비리지는 않다.

그래서 글자 하나까지 읽어버리는

커피 향이 흐느끼고 있다.


쓰다만 편지에서도

읽다만 책 속에서도

나는 이별의 흐느낌을 맛보았고

그리움을 타서 마시는 마지막 잔은

나처럼 그렇게 진하게 사랑했었나 보다.


멋스럽게 보이려고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그 몸서리쳐지는 쓴 맛에 이게 뭐라고, 이게 뭐가 멋있다고를 곱씹으며 아주 작은 잔을 주먹 속으로 쥐었다 폈다를하며 웃던 청춘의 그날들이 이제는 고소함으로 변한걸 보면 나이를 먹은 것인지 커피가 나를 닮아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꼭 창가에 앉아 쪼로로 흘러내리는 가느다란 빗줄기를 손가락으로 잡으려고 하면 "사약 같은걸 왜 마셔요"라던 후배들에게 "너희가 낭만을 알아. 에스프레소는 낭만이야"라고 특 던지던 내 모습이 지나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환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때는 그랬지 하는 것도 어쩌면 진한 커피맛을 알아버린 중년이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커피맛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네 생각을
하고, 안 하고에 따라...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의 커피맛은 어떨까?

무심히 마시는 커피맛은 또 어떨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니 내게는 커피와 당신을 연결해 주는 이야기가 없어서일까? 그래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커피를 마시면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퇴근 후 커피 한잔에 책을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지만 늘 방해받는 것이 싫어서 혼자 마시다 보니 그런가 보다. 그리고 연애를 할 때에는 "몸에 안 좋으니 좀 줄이세요"라는 말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러면서 커피를 마시는 그녀가 참 얄밉게 보였는데, 하긴 그 시절 나는 진한 커피맛을 못 느끼고 단지 멋스러우니까 마셨고, 또 그 당시에는 음악다방에서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처럼 퍼져있을 때였으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게 뭐라고...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언젠가 커피 묘목을 선물 받아서 3년 정도를 키운 적이 있었다. 화분에 물을 줄 때면 이 작은 나무에서 빨간 열매를 만날 수 있겠지 하며 정성을 다 쏟아부었는데 결국 이 나무는 배신을 하고 말았다. 내게서는 그 흔한 열매 하나 보여주길 꺼려하더니 아버님 댁으로 이사를 보내고 난 직후 "아들 커피가 열렸어 아직은 시큼한 색인데 곧 빨간색이 될 거 같아"라고 어머님의 떨리는 목소리에 난 커피나무가 날 배신했다고 여겼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커피 묘목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참 귀한 녀석이었는데 내가 너무 귀한 대접을 해 줘서인지 내게서는 열매를 끝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4월에는 또 한 번의 배신을 각오하고 커피나무를 심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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