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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Apr 01. 2016

커피 같은 그리움

창가에는 소복하게 버려진 원두가루가 쌓여간다.

향기도 잃어버린 철 지난 바닷가 모래성처럼

볼품없이 쌓여만 가고 있다.

내 그리움을 녹여서 섞어 마시던 커피가

추억의 무게에 눌린 듯 창밖을 보고 있다.

다시 물을 끓이고 진하게 커피를 내린다.

온 거실에 커피 향이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네가, 네가 향을 따라 걷듯이

오늘은 커피 향이 고개 숙여 걷고 있다.



커피 한잔에도 기억이 향긋하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기억을 마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기도 한다. 아직도 많은 종류의 커피가 냉장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았다. 이 녀석은 약간 시큼해요, 그리고 요 녀석은 향이 정말 진하고요 식의 리얼한 리엑션으로 설명을 하던 커피 볶는 여자도 냉동실에 두고 먹으면 향이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까?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기억도 없는 그 가게를 찾아가서 이러면 향기가 오래간다고 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가끔 커피를 마시면 그 깨끗한 소녀 같은 미소를 떠 올릴 뿐이다.

사록 사록
설탕이 녹는다.
그 정결한 투신
그 고독한 용해
아아
심야의 커피
암갈색의 사연을
혼자
마신다
늦은 밤이다.

박목월의 심야의 커피

늦은 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무심코다.

이유를 붙이기가 애매하기만 하다. 뭐 딱히 이유를 달자면 멋있잖아 하고 씨익 웃는다.

물론 늦은 밤에는 아주아주 연하게 마신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책 속에서 울기도 웃기도 하다가 마시는 커피는 정말 맛이 좋다. 또 하나 둘 꺼져가는 밤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정말 맛이 좋다. 나도 어쩌면 목월과 같이 사연을 마시는 것은 아닐까?


견디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신다.

남 보기에라도
수평을 지키게 보이려고

신달자의 커피를 마시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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