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

by 한천군작가

밤을 새워가며 눌러쓴 내 마음이

아침이면 보낼까를 망설이게 만든다.

간밤의 내 수고에게 미안해서라도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 앞에서

또 한번 망설인다.

텅...

둔탁한 소리에 놀란다.

저 소리만큼만 가슴을 울려주면 좋겠다.



밤은 무기력하지 않다. 작은 전등 아래서 편지를 쓰던 그 옛날 우리는 절대 무기력하지 않았고, 밤이 이끄는 잠이라는 놈을 쫒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청춘이었다.

봄이면 꽃이 피어서 글씨가 되었고, 여름이면 풀벌레가 찌르르 뛰어다녔으며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바라보는 구름 한 점 없는 이름 모를 길이 들어왔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야위어가는 가지를 살찌우는 풍경이 들어왔었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적어서 곱게 셔츠로도 접고, 사선의 빗장으로도 접어서 내 마음 들킬까 봐 봉투엔 아무것도 적지 않은 꽃무늬 편지봉투를 어느 집 우편함에 넣고 누가 볼까 빠른 걸음으로 숨을 허덕이던 추억이 이제는 사라지고 하나 둘 흰머리카락이 늘어나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그때 그 소녀도 지금은 나와 같겠지 하면서도 궁금하다. 곱게 나이 먹고 있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하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고운 벚꽃잎 날리는 이야기로 편지를 쓴다.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누군가 사랑의 편지를
배달해줄 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뛴다.
용해원 님의 삼월 중

빨간 우체통을 못 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어딘가에는 꼭 있을 거야 하며 몇 블록을 걸어서 두리번 거렸지만 결국 포기를 하고는 돌아왔다. 그리고 이름도 예쁜 손편지 한통을 우체국에 맡기고 가벼운 걸음으로 봄과 손 맞잡고 걸어 본다.

이제는 우체부 아저씨를 봐도 설렘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올 편지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누가 편지를 씁니까 라고 말을 하는 청춘들에게는 어떤 것이 낭만일까? 영화 속 복고는 좋아하면서 정작 숨 쉴 수 있는 영원한 복고는 왜 다들 돌보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딸... 전화하지 말고 편지 좀 써봐. 아빠도 편지가 받고 싶네. 답장은 꼭 해 줄테니까"

이렇게 말을 하니 돌아오는 것은 헛웃음만 나오는 말뿐이다.

"메일 주소 문자로 찍어줘 그럼 쓸게"

편지.

편지를 몰라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편리함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편지는 자판을 두들기고 보내기를 클릭하면 되는 것이 편지다.

긴 한숨을 내 쉬고는 편지지를 앉은뱅이책상 위에 올려놓고 만년필을 곁에 둔다.

답장을 메일로 받더라도 난 내 딸이 편지가 얼마나 향기로운 것 인지를 알려주고 싶어서 꽃을 피우고 나비를 불러오며 바람을 꼬리 치게 만드는 풍만한 솜사탕 구름을 편지 지속에 살며시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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