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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May 18. 2016

소년이 온다

5월이면 아픈 상처를 들치곤 한다. 그래 오월은 계절의 여왕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독 그곳에서만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책 표지가 이뻐서 책장을 넘기다 덮고는 서점을 나오고 그리고 두어 시간을 책 속에 잠겨있었다. 왜?라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하면서 나는 마지막 장을 넘기며 책을 덮고 있었다.

마치 그의 시 유월의 마지막 구절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떠나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으나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이 시가 불현듯 떠 오른 이유는 뭘까?

그녀만이 풀어낼 수 있는 그녀만의 방식으로의 소설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1980년 5월은 그렇게 글로 다시 우리의 눈 앞에 섰다.


열다섯의 동호의 이야기다.

천착의 서사라고 해야 할까? 동호에게 그리고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 다시 말해 상처의 구조 혹은 내면의 남겨진 암전과도 같은 그것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5.18이란 묵직한 아니 너무도 무거운 질문과 그 답이 없는 답을 구하라고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깊은 트라우마를 얼마나 깊이 세겨진 상쳐인지 모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글 하나하나가 그렇게 다가온다.

너무도 핍진한 표현들이 이것은 지난 일이 아닌 우리가 묻어두려는 역사구나 진실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책은 모두 6당으로 되어있으며 그다지 두꺼운 책이 아니다. 매 장이 넘어갈 때마다 나의 가슴은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옴을 느끼며 읽었다. 아니 그 시절을 느꼈다.


1장에서는 중학교 1학년의 동호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그리고 동호의 주면 사람들(은숙 누나, 진수형, 선주 누나)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다.

생생하게도 묘사를 하여 정말 그 시절 그 장소에 내가 서서 보고 있는 듯 아니 내가 격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욱 아팠다.

군인들이 쏜 총에 맞은 친구 정대에게 달려가지 못한 자신의 비겁함을 가책하며 전남도청 상무관으로 가는 동호의 심리적 묘사와 동호의 말 한마디가...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이 한마디가 참 씁쓸하고도 아이러니하다.



2장 검은 숲에서는 동호의 시점이 아닌 정대의 시점에서 글을 풀어간다.

죽은 정대의 시점 변환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대목들이다. 나라면 지나치고 말았을 시선을 그녀는 너무도 섬세하게 잡아내고 있다.


3장에서는 그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어떤 배우는 그 시절 누군가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을 할 수 없었다는 우스운 현실이 여기서도 비친다. 언론이 언론일 수 없었던 그 시절 은숙은 편집자로 일하면서 원고 검열로 인해 경찰서에서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그 시절은 그랬다고 한다. 그 시절 국가가 가진 최고의 부조리를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보게 된다. 바로 너무도 엄격했던 규제와 제약에 대한 부조리를...


4장 쇠와 피에서는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너무도 많은 치욕을 맛보고 그것으로 그들은 파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며 새로운 시점의 전환이 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고문에 못 견뎌 수감 중 자살을 하게 되는 진수의 이야기를 함께 수감되어 있던 다른 이의 입을 빌려 전하는 시점의 전환으로 다음장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리고 최고조로 올라가는 동주의 울분에 찬 물음인 인간의 본질은? 이란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5장 밤의 눈동자

나는 각장의 부제들을 이렇게 썼을까를 알게 되는 장이기도 하다.

가두방송을 하였던 선주 역시 총기 보유라는 죄명으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잊고 살아가려는 그녀에게 그 시절을 기억해 달라는 이기적인 면을 볼 수 있다.


6장 꽃핀 쪽으로 에서는 마지막 시점의 변화를 가져오고 동호의 기억을 떠 올리며 말하는 것이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애절한 시점의 전환인 동호 어머니의 시점으로 글을 풀고 있다.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 버렸다이. 인자 나는 암것도 알 수 없어야. 
겁이 나서 얼굴이 파랗게 굳어 있던 시민군들, 어리디어리던 그 자석들도 죽었으까이. 
그리 허망하게 죽을 것을, 왜 끝까장 나를 안 들여보내줬으까이

이 책은 2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책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이 마치 그 시절 그 사건을 보고도 고개 돌려버린 방간자가 되게 유도를 하기도 하고 또 그 죽어가는 피해자가 되기도 하게 하는 나가 아닌 너 혹은 당신이라는 2인칭 시섬의 묘한 글이다.

그래서 책 속에 내가 있고 내가 책 속에 있는 듯 감정이입이 극에 달하게 만드는 한강만의 쓸 수 있는 한강의 소설이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래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은숙이 죽은 동호에게.


나는 동호가 말했던 대사가 너무도 가슴 아린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 
눈을 감고 있던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새 같은 무언가가 문득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주검이 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


그녀는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귀가 아직도 가슴 아린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광주 민주화운동은 그렇게 역사 속에 잠들어 있다. 그 아픈 과거를 다시금 우리에 잊으면 안 돼 하며 말을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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