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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May 30. 2016

1940년대 나는 보고 있다.

권비영 작가의 소설 몽화

 患亂(환란), 그것은 희망을 낳았다.                            


덕해 옹주와 은주를 읽었던 탓인지 이 책 역시 그냥 손길이 가는 믿음이 있는 책이었다. 간혹 나는 잡식성이다 라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신뢰가 가는 작가의 책에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안 좋은 습관인데 하며 또 그렇게 먼저 잡은 책이 몽화이다.

영화 귀향을 본 뒤 영화에 대한 감상을 글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서. 그리고 너무 큰 분노를 억누르느라 글 한 줄 써 보질 못했다.

영실, 은화, 정인.

이 세 소녀의 이야기는 평범한 세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어떤 방향으로 읽어야 할까 하고 고민도 참 많이 하였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내 눈은, 내 머리는, 내 손은 어김없이 질주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주재소 순사를 때리고 만주로 도피하고 그 아버지를 찾기 위해 어머니 역시 만주로 떠나고 이모네로 보내지는 영실.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오롯하게 보인다. 국밥집을 하는 이모네에서는 중학교 학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지고 우울한 나날의 연속에서 영실의 앞에는 운명처럼 두 소녀가 나타난다.

여기서 부터의 구성과 인물의 표현들이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는구나를 느끼게 된다.

바로 부모를 잃고 화월각이라는 기생집, 주인의 손에서 크게 된 은화는 빼어난 외모와 또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성숙함과 명석함을 가졌다. 하지만 그 나이의 여느 소녀들과 같은 생각에 잠긴다. 다름 아닌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기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갈등을 하는 모습.

이때쯤이면 나와야 하는 인물이 바로 정인의 아버지다. 일본 앞잡이인데다 정인을 타국으로 보내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우울증까지 가지게 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의 기본적인 집안 사정과 그녀들의 심리적 묘사가 참 좋다. 그리고 그녀들만의 아지트? 다리 아래의 동굴에서 그녀들은 우정을 더욱 두텁게 쌓아간다. 그러다 정인은 아버지의 강제로 인해 불란서로 떠나게 되고, 은화는 기생이 되는 것을 피하려 가출을 하고 그로 인해 무서운 곳으로 끌려가 버린다. 이제 정말 혼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된 단 한 사람 영실도 일본으로 떠나게 되는데...

- 기생하던 애가 나와서 뭘 하겠니? 힘든 일을 할 것도 아니고…….
은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얼른 대꾸했다. 또박또박, 잘못된 일을 정정하듯이.
- 언니. 나, 기생은 아니잖아요.
- 엎어치나 메어치나, 그게 그거지. 너, 거기서 살았는데 머리만 안 얹었지 뭐가 다르니?
영란 언니의 말투도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반드르르한 가구나 화려한 장신구들이 갑자기 창이나 쇠스랑 같은 무기처럼 느껴졌다. 그곳은 그녀가 머물 곳이 아니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멍하니 서 있는 은화에게 영란의 말이 화살처럼 꽂혔다. (…)
- 그래, 인생은 어차피 혼자 겪어야 하는 전쟁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잠시 머물렀던 여인숙 주인은  엉큼한 속내를 감추고 집요하게도 일자리를 제의하는데 그것이 바로 길거리의 벽보인 위안부 모집 광고였다. 하지만 본문에서도 보이는 차가운 현실에 대한 확인이라도 시켜 주는 듯한 대화가 시대를 보여 주는 듯하다.


각각의 인물들이 참 다채롭다. 아니 개성이 강하다고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영실의 이모 을순도 그렇고 그녀의 정부인 나카무라도 그랬다. 우직한 사내 칠복이 그렇고, 

억척스럽고 정 많지만, 남자를 상대하는 데는 이골이나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색을 파는 것도 대수롭지 않은 영실의 이모 을순이라든지, 을순의 정부(情夫)로 일본인이면서도 나라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이 더 중요한 의뭉스러운 장사꾼 나카무라, 정인 네 머슴으로 주인댁 아들 대신 강제 징용에 끌려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지만 약자만 보면 보호하려 드는 우직한 사내 칠복, 정보력 강하고 눈치도 빠르고 상황 판단력도 강해 탄광촌에서 박사로 불리며 칠복의 탈출을 돕는 쾌활한 남자 정한우 등,『몽화』는 세 소녀 외에 마치 박경리 소설 속 인물 같은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극의 재미를 더한다. 
또한 영실을 중심으로 잘생긴 엘리트지만 우유부단하고 허약한 도련님 태일과 머슴 출신이지만 우직하고 영실을 끝까지 보호하려는 칠복과의 삼각관계나, 을순과 나카무라의 사랑과 잇속을 넘나드는 장사꾼적인 애정 관계 역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한축으로 작용한다.

몽화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들의 전 세대의 꽃다운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몽롱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작가는 단순하게 위안부 문제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강제징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다. 강제 징용 피해, 징용 당해 온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당한 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탄광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에 가깝다.

에이, 조센징! 재수없다! 빠가야로!
노무는 채찍을 허공에다 내리치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이렇듯 책 속에서는 그 많은 고문을 견디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많이 아프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 한 부분 중 하나인 등장인물들의 다양성과 실재와 같은 생동감이 마치 대하소설 속의 등장인물의 묘사와도 같은 재미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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