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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May 16. 2016

눈으로 하는 작별

     참 오랜만에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매월 작가당의 주제를 뽑고 그에 상응하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이도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시를 쓰는 나에게는 마치 숙제 같은 느낌이었지만 참 잘도 넘어갔다. 커피에 대한 상념 혹은 추억이 있었기에 글을 수월하게 써 내려갔고 이번 달 주제가 책이라서 이도 수월하게 넘어가는 듯하다. 그것은 잡식성 독서광이라는 나의 또 다른 이름 덕일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혹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 뭔 책을 그리도 사서 읽느냐 도서관 가서 빌려보든지 하지 아이고 한 달에 책값이 얼마야" 하는 말들을 참 많이 한다. 하지만 도서관의 경우 대출일이 장장 14일이나 된다. 나에게 몇 권의 책으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라는 말일까? 하는 생각도 간간히 한다. 점심시간에 참 반가운 작가의 책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읽어 버렸다. 이상한 것이 책은 아무리 급히 읽어도 체하지를 않는다.

얼마 전 좋아하는 혹은 존경하는 작가에서 특이하게도 중화권 작가가 없다는 이야길 듣고 이 사람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쉽게 읽을 줄 알았는데...

흔히 에세이는 쉽게 책장이 잘 넘어간다. 그래서 잠깐잠깐 읽어야 할 때에는 에세이를 혹은 산문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에 손에 잡은 룽잉타이(龍應台)의 눈으로 하는 작별은 참 더디게 책장이 넘어갔다. 아니 한 장 한 장의 책장을 내가 잡고서 놓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리사 고이치의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 이 떠 올랐다. 이 책 역시 가족 간의 사랑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나이를 먹고 있음이었다. 이건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가슴이 아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섬세한 글이 여백까지도 숨 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은 유독 나만이 아닐 거란 생각도 가졌다.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해도, 모래 한 알에도 무한한 우주가 들어 있다면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에도 영원한 시간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 맞아요. 제가 엄마 딸이에요.


이 말이 아직도 귓가에서 울린다. 아니 내 눈 속에 들어와서는 나가지가 않는다.

시대적인 면에서 이야기하는 그 시점이 색다른 이 책은 읽는 이들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아주 묘함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라는 시점을 작가는 만들어 내고 그 시점으로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만드는 그런 속 깊은 책이다.

조금씩 어둠이 걷히는 새벽, 엄마는 어느새 깨어나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는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몸이 점점 왜소해지면서 걸음이 가벼워지고 목소리도 작아지면서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진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나는 쓰던 글을 멈추지 않고 말한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우유라도 데워드릴까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가만히 속삭인다.
“그쪽은 내 딸을 닮았네요.”
고개를 든 나는 엄마의 성근 흰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한다.
“엄마, 맞아요. 제가 엄마 딸이에요.”           

나는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타고 흐름을 느끼고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손수건을 잡았다.

부모란 어떤 의미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명확한 답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다.

어떤 이들은 둥지와 같다는 말을 하지만 결코 둥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우스갯소리로 둥지는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에 동의를 한다. 언제나 우리를 안아줄 수 있는 존재, 언제나 편히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가도 어떤 이유도 없이...

이 책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가슴이 여전히 아린 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 책 눈으로 하는 작별은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너무도 섬세하게 묘사를 하고 너무도 정갈한 문체로 써 내린 수필집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의 치매, 그로 인한 어머니의 기억력이 차츰 잃어가는데-주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인생의 답을 구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어느덧 자신이 엄마로서 훌쩍 자라 버린 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시점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어 감정과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또 말하고 있다.

짧은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천천히 음미를 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늙었다. 그래서 등이 굽었다. 당연하다. 치아도 음식을 씹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다. 당연하다. 걷지도 못하신다. 당연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곁에서 걷고, 함께 밥을 먹고, 부축해가면서 같이 앉고,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 모든 순간에, 한 번이라도 아버지에게 제대로 시선을 준 적 있는가?
그렇다면 ‘늙는다’는 의미는 곧,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한다는 뜻일까?
문득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겨울철 건초처럼 부스스한 흰머리를 정수리에 대충 묶고 있지만,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에는 오히려 집착이 가득하다.    

"어떤 외로움은 곁에 얘기를 나눌 누군가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개 한 마리가 덜어줄 수도 있다."

참 슬픈 글귀가 아닌가. 내 외로움을 개 한 마리가 덜어줄 수도 있다는 말. 하긴 나 역시도 가끔 강아지를 키울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외로움을 어떻게라도 나누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랑이란 속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반딧불이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렇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나와는 다르니까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결코 나와 다른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의 작별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라는 것이다.

물론 그 대상과 그 사연이 서로 차이를 두겠지만 결국에 만나는 작별은 같을것이까.

그녀는 분명 명쾌한 문장가다.  글의 다양함 속에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체험과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은 아주 큰 장점이다. 그녀는 적절하게 섞을 줄도 안다. 유머도 약간씩 섞어내고, 공감대를 형성할 줄도 안다. 또 아들과의 대화나 메일을 주고받을 때는 항상 긴장하게 되었다. 세대가 다르다는 차이를 느끼고, 자신의 의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 앞에서 버릇없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느끼다가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앞에서는 괜히 찡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아무리 그리워하고 마음이 놓아주지 않더라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우산이 되어주셨던 아버지, 스스로는 혼란한 세월의 고아로 버려졌지만,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돕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 자식들의 감사와 아내의 그리움을 이제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는다. 양초가 다 타 없어져도 마음을 밝힌 촛불이 우리 인생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보이지 않지만 우리 인생의 여정과 평행선을 달리는 그 길로, 아버지 부디 잘 가세요. 해가 서산으로 지듯이, 그리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우리의 이야기가 될 가슴 아린 이 책을 함께 공감하였으면...

그랬으면...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라는 그녀의 말이...      다양한 단상들을 엮어내고 또 역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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