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이름의 그 섬은...
안식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어스름 땅거미 지면
자연히 찾아드는 골목길
내 집으로 가 듯
알지 못하는 이 그림자 따라가고
흐르는 긴 차량의 물결
물결이 날 쓸어
눈감게 만드는 저녁
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출근길의 바람은 참 시원하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쳐 오는 길이 오래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과일집 아주머니의 "안녕하세요"라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의 피로를 가져가 버리고 미역 파는 아주머니의 "오늘은 일찍 가네"라는 아침 인사에 씨익 웃어 보이고, 정육점 주인아저씨의 "이따 들러 고기 좋은 거 왔으니까"라는 말에 "네"라고 짧게 답을 한다. 아마 오늘 퇴근길에는 잘 먹지 않는 고기를 사서 들고 가겠구나 한다. 시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어쩌다 이 사람들과 나는 인사를 하며 지내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보니 그 사람으로 인해 생긴 버릇 때문이다. 어딜 가든 먼저 "안녕하세요"하던 그 사람 때문에 내 입에도 그 짧은 인사가 붙어 버린 탓이다. 그 후로 나는 그렇게 아침 인사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 어떤가 이곳에 내려온 지 4년인데 이렇게라도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러면서도 나는 늘 그 사람이라는 섬을 그리워하고 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딸기 사러 요즘은 안 오네"라고 말을 하면 울컥하지만 그래도 씨익 웃는다. 정육점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로 "오겹살 좋아하잖아 좀 남겨둘게 퇴근길에 가져가" "네"라고 답하고 나는 어김없이 그것을 사서 집에 간다. 사실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는데 그 사람이 좋아하니까 조금 먹었을 뿐인데 습관처럼 사다가 냉장고에 툭 던져 넣어 버린다. 이 모든 것이 그 섬에 가고 싶어서가 아닐까. 나는 오늘도 출근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당신이라는 그 섬을 그리워하며 걷고 있다.
말이 없다는 것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정작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벌써 인사가 아닙니다.
참으로 인사를 하고 싶을 땐 인사를 못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더 큰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 앞에선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는 것이 사랑의 진리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땐 잊는다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은 너무도 헤어지기 싫은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한용운 님의 인연설 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