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길을 걷다 마주하는 이름 모를 풀꽃은 우리를 보며 미소 짓지만 그 속네를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는 지금까지의 내 꽃에 대한 글들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그 이름 재미있네, 그 이름 어떻게 지었을까? 이런 의문에 이 책을 들게 되었던 것이 언제였나. 책을 놓지를 못하고 몇 번을 더 읽으며 한숨을 얼마나 쉬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만 피는 꽃에도 아픈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알 수 없는 아주 미묘함이 나를 건드리고 있었다.
사람도 제 이름이 맘에 들지 않으면 개명을 한다. 그런데 왜 잘못 지어진 이름은 좋은 우리말을 두고 그냥 그대로 두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호적에는 한글과 한자로 이름을 표기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하게 부르는 이름과 학명이 존재를 한다. 그런데 그 학명에는 일본 학자들의 이름이 아직도 붙어 있다는 것이 아프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이르면 ‘개’ 자가 붙은 풀꽃 이름은 대폭 늘어 무려 78종에 이른다. 이를 분석해본 결과, 78종 가운데 20종은 일본 말 ‘이누(犬)’의 번역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개나리(조센렌교)처럼 일본어로는 ‘조센(朝鮮)’이라고 불리던 것도 6종이나 ‘개’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왜 조선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꽃이 없는 것일까? 아니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개를 붙였을까? 많은 물음에 대한 답이 거기 있었다.
큰 개불알꽃은 가까운 곳 어디라도 피어있는 꽃이다. 보통 이맘때면 피는 꽃이지만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 라는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의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가 꽃의 열매가 마치 개의 음낭(이누노후구리 犬陰囊(견음낭))을 닮았다고 이런 저급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제 글꽃에도 등장을 한 개망초에도 일본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이었다.
개망초의 일본 이름은 히메 조온. 일본어 ‘히메(姬)’는 어리고 가냘프며 귀여운 것을 뜻하므로 애기망초나 각시 망초로 옮기는 것이 적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히메’가 붙은 이름은 대부분 ‘각시’나 ‘애기’로 번역된다. 그런데 개망초 등 일부 식물은 ‘히메’를 ‘개’로 번역해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꽃에는 유독 조선(朝鮮), 고려(高麗)가 들어간 꽃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단어도 유린을 하였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봄을 대표하는 꽃인 개나리의 일본 이름은 조센렌교(チョウセンレンギョ)이다.
일본 말로 조선(朝鮮)을 뜻하는 조센(チョウセン)이 붙어 있으나, 번역자들은 ‘조선’ 대신 ‘개’를 붙여 개나리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개나리 외에도 개암나무, 개벚나무, 개비자나무 등이 ‘조선’이 ‘개’로 번역된 경우라고 한다.
저 갸녀린 꽃에게까지 일본은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고 생각을 하니 아프다.
‘조선식물향명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조사해 2079종의 식물 중 99종에 달하는 식물 이름에서 ‘조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런가 하면 식물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학명에 남은 일제 잔재도 심각하다. 국립 생물자원관에서 만든 ‘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식물은 모두 33목 78과 527종이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이 가운데 일본 학자 이름으로 학명이 등록된 식물은 모두 327종으로 무려 62퍼센트에 달한다.
금강초롱은 예전엔 화방초(花房草)라고 불렸다. 이 이름은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하나부사 요시타다라고도 부름)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나부사는 초대 일본 공사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던 시기 활동한 인물이다. …… 나카이는 금강초롱 말고도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사내초(寺內草)라는 이름도 지어 헌상했다.
본문 중에서.
금강초롱은 금강산 등 산지에서 자라는 꽃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특산종이다. 예전엔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이름을 붙인 화방초(花房草)라고 불렸다. 하나부사는 초대 일본 공사로, 일제의 조선 강점 발판을 마련했던 인물 중 한 명인데 이 하나부사는 한반도 자연을 착취하기 위해 각종 자원을 조사했으며, 그 과정에서 나카이 다케노신을 비롯한 일본 식물학자들을 지원했다. 금강초롱은 이제는 더 이상 화방 초라 불리지 않지만 학명(Hanabusaya asiatica Nakai)에는 여전히 하나부사의 이름이 남아 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이 책에는 이 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면 가슴 아림을 느끼기에 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눈물 아닌 눈물이 흐른다.
등대풀은 등잔 풀의 오역이다. 일본의『어원 유래 사전』은 “등대풀에서 등대란 항로 표시를 위한 등대가 아니라 옛날 집안의 조명 기구인 등명대를 말한다. 등대 꽃을 보면 심지처럼 노란 꽃대가 올라와 있고 꽃잎이 그 주변을 받쳐서 마치 등잔처럼 보여 이렇게 부른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등대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등잔불을 켠 듯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도 일본인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이름을 붙였다면 전혀 다른 이름이 나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본 이름을 따서 등대풀이라 부를 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은 채 식물 생태만 설명하고 있다. 등대풀은 높은 언덕에서 꼿꼿이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들꽃이다. 일본인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도 모자라 제대로 번역도 하지 못했으니 손꼽히는 부끄러운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등잔 풀로 고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벚꽃은 일본인들이 유독 사랑하는 꽃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벚나무가 일본을 상징한다 하여 베어 없애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 왕벚나무(Prunus yedoensis Matsumura)는 제주도 신례리와 봉개동, 전라남도 대둔산에 자생하는 순수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1908년 프랑스 출신의 에밀 타케 신부가 한라산 자락에 있는 관음사 뒤 해발 600미터 지점에서 채집한 왕벚나무를 당시 장미과의 권위자인 베를린대학교 베른하르트 쾨네 교수에게 보내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이 최초로 밝혀졌다. 하지만 왕벚나무의 학명에는 우리나라 학자가 아닌 일본 학자 마쓰무라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하루빨리 우리 풀꽃 아니 우리의 아름다운 꽃들에게 본디 이름을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저자의 글에서 처럼 이 꽃들의 잘못된 이름을 지우고 이제는 아픈 이름이 아닌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돌려줘야 할 것이다.
나의 간절함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