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지 않은 가을에

by 한천군작가

언덕을 구르는 시든 잎이

벌어진 밤송이를 숨기고

가을이 든 산에서는

단풍이 절로 노래를 한다.

덜 익은 가지 하나 꺾어

산이라 할 수 없음에

비 역시 꿈틀거리며 엎드려

봄풀이 떠나기 전에

어여 낙엽이 내려 덮어주었으면.


바람이 차다 하여 창을 닫기만 할 것인가. 잠시 열어 둔 창으로 달빛이 정겨우니 얼마나 좋은가.

매일 밤 바라보는 달은 그 자리가 다르고 그 모양이 다른데 바람까지 같을 수 없기에 어젯밤에도 창을 열어 두었다.

가을은 이렇다.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고 바라보는 것 하나하나가 새로 웁기에 어질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짧은 가을이 야속하여 옛 선인들은 노래를 많이도 하였는가 보다.

秋風淸秋月明(추풍청추월명)
바람과 달이 맑음과 밝음으로 서로 좋은 짝을 이루는 가을밤

李白(이백)의 삼오칠언 가을밤 중 첫 구절

적선인(謫仙人) 李白(이백)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자유로운 그의 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잠깐의 여운을 만날 수 있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말하였던 하지장(賀知章)의 말이 어쩌면 정말 그랬을까 하는 의문조차도 두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의 시다. 그래서 가을이면 그의 시를 다시 꺼내어 보기도 하는가 보다.

오늘도 나는 그의 시와 함께 바람 좋은 곳으로 산책을 나선다.

비가 그친 후의 바람은 매끄러움이 좋다. 만지려 들면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좋다.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자유로움이다.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한가로움이다.

오늘 같은 날...

적선인(謫仙人) : 천상에서 추방당한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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