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로 피어난 바다
붉은빛 한 땀 적셔
내 누이 새끼손톱에 바르고
긴 겨울을 기다리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갈매기 날개로 펄럭이는 바다
하얀 날개 두 번 접어
내 집으로 가는 편지로 접어
긴 도로의 끝에 선
내 그리움이 되었나
가녀린 풀잎으로
목이 긴 코스모스로
밤송이 주렁주렁
이끼 낀 돌 틈으로 흐른 여름
갈대로 피어나고 있는 바다가 그립다
저물어 가는 노을을
조용히 바라만 보다
그물 걷어 오는 작은 배에
걸쳐지는 붉은 물
내 그리움 빛이구나
가을은 가는 곳마다 그리움이 숨어 숨 쉬는 듯하다. 그리고 트렌치코트를 늘 바라만 보는 것도 가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옷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보물 같은 녀석을 보면 예전 철없던 시절에 영화 따라 하기를 할 때 산 것이 여태껏 내 옷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가을이구나 한다.
영국 가면 꼭 워털루 브릿지에서 입어야지 하며 산 것인데 그때 한번 입어 보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아마 십 년도 넘었는데 - 영화 애수를 아버지와 함께 보고 나는 비비안 리에게 사랑에 빠졌었다. 그런데 고작 트렌치코트 때문에 로버트 테일러에게 빠지다니 하는 생각을 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찾은 워털루 브릿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두 연인 비를 맞으며 포옹하는 장면에 나를 포개어보며 흐뭇해하였던 그 시절이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영화 속 비극 또한 이 다리에서였으니 비가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하였으니...
그리고 문득 영화 속의 하얗고 조그마한 인형 목걸이가 어디 있을 텐데 하며 찾아봐야지 한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팔려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이런저런 그리움이 많은 것이 가을인가 보다.
오늘 밤에는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봐야겠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이제 중년의 시선에 보이는 첫사랑 같은 영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