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아요.
뜨거웠던 구름이 땀을 흘리 듯
창문에 흐르는 땀 방울이
은빛으로 향기로워
노둔한 생각에서 오는
간절함은 미련의 잎으로
떨어져 구르는 계절
지난 더위가 주고 간 교훈으로
늦가을 바람처럼 와서는
누운 벼를 일으켜 세우고
기억 하나를 두고 왔는지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을 나는 안다
내 기억이 잘 있다는 것을..
공상은 언제나 같은 환상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면서 장난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노래처럼 경쾌한 시나 황혼의 아름다움이 자아낸 눈물과 우수를 통해,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마치 봄풀처럼 파릇파릇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그 흔한 영화 한 편 본 기억도 없다.
그 흔한 여행을 함께한 기억도 없다.
지금 떠 올리면 우린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쓰리기만 하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 이기적인가 보다. 좋은 사람은 좋은 것만 기억을 하고 싫은 사람은 가장 싫은 것만 기억을 하니... 그래서 좋은 것만 기억을 하고 있었나 보다.
언젠가 약 3개월의 기억을 잃은 적이 있다. 그 순간에는 페닉 상태였지만 뇌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곁에서 지켜봐 주던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 뇌보다는 몸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가 보다.라고 하는 말에 나 역시 그렇군 하였다.
저기 저 다리를 얼마나 많이 걸어서 갔을까?
그해 여름에는 매일 걸어서 갔던 것 같다. 매일 이야기를 나누지만 무슨 이야기가 또 남았는지 그렇게 수줍게 많은 말을 하였던 그 길이 어떤 날은 참 그립다. 무엇을 이야기하였을까? 그때는 저렇게 야간 조명이 없었는데. 그때는 저렇게 많은 차가 다니질 않았는데. 나의 1989는 그랬는데...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고재종 님의 첫사랑
한 여름 열기를 식히려는 듯 강바람은 시원하게 불었고 강 건너 뒤벼리는 컴컴하기만 하고 윙윙 모기 소리에 원을 그리듯 담배에 불 붙여 세워두고 그 안에서 이야길 나누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별이 많지를 않다. 얼마 전 다녀온 그곳에는 그 시절의 하늘이 아니기에 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날씨가 조금 흐리니 별들도 서둘러 들어갔는가 보다 라고 혼잣말을 하였지만 서운함이 없진 않았다.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이 생겨났지만 그 버스 정류장은 그대로였다. 그 시절처럼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사라졌을 뿐 그 자리에 여전히 터줏대감처럼 농협이 그 시절 그대로 서 있었다. 한참을 서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 시절 그곳은 내 추억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곳이기에 몇 개비의 담배를 비우고는 자리를 떠났다.
"내가 너를 부를 때"
음악다방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그 시절 그곳의 이름이다. 언젠가 쓰다 만 소설의 제목이며 얼마 전 쓴 글의 제목이기도 한 그 이름이 오늘은 참 그립다.
내 기억 속 한 페이지가 그립다.
여전히 잘 있지 내 소중한 기억...
습관.
뭔가 생각에 잠기면 나도 모르게 음료에 꽂혀있는 빨대의 끝을 손가락으로 막고는 살며시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가고 손가락의 힘을 푼다. 그러면 아주 소량의 음료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어버린 이 행동은 책을 볼 때 혹은 생각에 잠길 때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이 되어버렸다.
이런 행동을 내가 느낄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나도 모르게...
만약 당신이 떠나가신다면
외로운 울음이 있을 겁니다.
태양은 다시 비치지 않을 것이고
하늘에서도 눈물이 떨어질 것입니다.
Neil Sedaka의 You mean everything to me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