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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Oct 21. 2016

두 번째 시간

두 번째 주어진 삶의 구원투수



대나무 숲이 바람을 부를까

바람이 대나무 숲을 좋아했을까

떨고 있는 댓잎에 부끄러움이 없는 바람이라

설레는 마음 진하기만 하다.

살아 살아서도 아니었는가

답답하여 열어버린 창으로

답답하기만 한 바람이 불어오고

대숲에 불던 그 바람이 아이기에

고개 돌려 앉아 버렸다.


여섯 해 전 인천공항에 첫 발을 디딜 때는 꿈인 줄만 알았다. 수없이 이곳을 찾았는데 떠날 때는 늘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를 그리며 설렘 가득하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집으로의 따뜻함을 느끼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해 가을의 인천공항은 여느 때와는 다른 공기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고 그 향긋함에 잠시 눈을 감고 들이마시는 바람은 너무도 행복한 바람이었다. 

포기라는 것을 할까 하는 생각을 매일 하면서도 눈 뜨는 아침이면 참 다행히 다를 속으로 곱씹으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으니 나의 이중성을 발견하기에 충분한 날들이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에는 급격히 빠지는 체중으로 내 몸은 내 의도와는 다른 게 움직여 주지를 않았고 끝내 휠체어의 힘을 빌어서야 가까운 거리의 복도 끝 아주 큰 창 앞에 가 있을 수 있었다. 그 창으로 밖을 보면서 처음으로 소원이란 것을 빌어 보았다. 창밖으로 산책을 하고 있는 나이 많은 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와는 상관없이 숨차 하지 않으며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모습에 나도 저렇게 산책을 하고 싶다. 고 소원을 빌었으니 마음 한편에는 포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나 보다. 어쩌면 아주 가늘게 늘어진 한 줄의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정확히 46일 만에 나는 그 산책로를 걷고 있었고 그 숨 막힐 정도로 향긋한 바람을 온몸으로 마시고 있었다. 

Parliament Hill (Ottawa)

소망...
단 하루만이라도 당신과 살아보고 싶다.
주어진 그 24시간이 다 갈 때
나 많이 울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
24시간 아무 말 없이 당신을 바라만 볼 수 있어도 좋다.
대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날 잊어줬으면 한다.
대신 울지도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소망...
돌아가고 싶다.
남은 시간 돌아가서 당신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정 힘들면 나 돌아올 테니...
아픔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나
당신 얼굴이 기억이 안 나
나 어쩌면 좋지...
나 어쩌면 좋으냐고...


2009년 가을에


살다 보면 잊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믿고 살았다. 하지만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나이를 많이 먹은 후였다. 

"남자에게 첫사랑은 죽어 무덤 속에 들어갈 때까지 가슴에 품고 간다"라는 말이 어쩌면 진실인가 보다 라는 착각을 하게 되어 버린 것이 이 기억이란 놈이 부리는 심술이었다. 그 심술은 가끔 잊어버리게도 만들어서 난감하기도 하다. 이곳에 오기 전 작은 고모네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의 훈련병 시절 사진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진 속에는 사랑도 함께 들어 있었으니...

그런데 그 사진도 기억이 나질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종일 기억을 해 내려고 쥐어짜 보지만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았다.

"반바지"

그것이 그 기억의 출발점이었다.

 




lake simcoe (Toronto)

비...

참 슬프다

하루 종일 혼자인 나를 발견할 때면

왜 이렇게도 끈질기게 살렸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인간이 가지는 가장 확실한 삶의 방법을 찾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힘들다. 

한국에서도

오타와에서도

나는

여전히 외로움과 싸워야 하고

또 이 지긋지긋한 병마와도 싸워야 한다. 

보름이 지났다

길게만 느껴진다.

처음 며칠은 너무도 좋았다.

누군가 숨 쉬는 곳에서 나 또한 숨 쉬고 있으니...

이젠 아니다

빨리 가고 싶은 맘 밖엔 없다.

오타와에 있을 때는 말하지 않아 좋았다

맨해튼에 가서도 그럴 것이다.

나 혼자만의 마지막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워질 것이다

이곳이...

2010년  가을에


마지막을 꿈꾸며 나는 어떻게 그 끝을 그릴까 라고 노트에 빼곡하게 적었던 글 들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그래서 Banff에도 가고 싶었고-1년 후에 그곳을 갔었다. Halifax의 페기스 코브의 등대를 보러 가야지-5개월 만에 다녀왔다. 이렇게 캐나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죽음을 코앞에 둔 자들만이 느끼는 간절함이 주는 선물이었으니 그 선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몇 번의 여행이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기적이라는 단어를 내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몸속에 자라고 있던 것들이 일순간 시간이 멈추듯 그렇게 멈추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크기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이 "낚시를 가도 되나요?"였다. 좀 더 멋진 말을 하고 싶었는데...



Byward Market (Ottawa)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래야겠습니다.

돌아가지도 못할 텐데... 

마지막으로 편지 한 통을 쓰고는 잊으려 합니다

세상을...

내가 살아온 시간을...

그것이 모두에게 득이 될 것 같아서... 

포기!

그것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주사실엘 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숨고 싶었습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았습니다.

낮 시간은 그곳에서 지내려 합니다.

아늑합니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위선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마지막 위선이었습니다.

아니 지독한 거짓이었습니다.

아마도...

오늘도 간호사가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좀 전까지...

그냥 웃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웃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내 눈물이 마를지

그렇습니다

나 눈 감는 그날부터 내 눈물도 없을 것입니다.

편안해지겠지요

그 편안함을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2010년 겨울 




아프다

그 느낌에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은 하루가 길 것 같다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내 몸은 그것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인지. 

어제는 날씨가 너무 좋아 외출을 했다.

완전 봄이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문득 길가에 큰 자전거 하날 발견했다.

반가웠다.

마치 한국의 진주에 있는 자전거 세대가 떠 오른다.

밤이면 논네온이 불 밝히는 강변의 자전거 세대...

멋쩍은 미소를 뱉으며 돌아서는 발걸음이 너무도 처량하다. 

새벽

이른 시간인데도 이곳 휴게실엔 불이 밝혀져 있고

아래층 응급실에도 불빛이 세어 나오고 있다.

모두들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

나도 역시나 그렇겠지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긴 숨을 들이마신다

멋쩍은 아침을 만나기 위해.

2011.09.27


새벽바람을 가르며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긴 비행에 지친 내 모습은 마치 타이타닉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물에 빠진 모습처럼 숨이 죽은 배추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새벽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다. 물론 비행 중 호흡기의 힘을 빌리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에 너무도 감사를 하였다. 지난 시간이 주는 나의 두 번째 시간에게 감사를 하며 한 걸음 한걸음을 걷고 있는 나를 보며 이제 나는 9회 말에 마운드에 등판한 구원투수다. 나에게 주어진 연장전을 위해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뿌릴 것이다. 한 번의 삶이 준 교훈을 가슴에 담고 두 번째 시간인 요즈음을 나는 행복하게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마지막 공을 던지는 구원투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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