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만 한 석류가
갈바람에 위태롭고
지난 장맛비에
톡 떨어져 있었던
붉은 꽃을 기억하기에
동백을 닮은 꽃을
날 세운 바람이
야속하기만 하다.
붉은 볼 만지는
갈 비는
민낯을 보여주는
너를 간지럽히고 있다.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동네라도 걷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간다. 지난여름부터 눈여겨봐 둔 그 집을 지날 때면 잠시 담장 위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석류를 본다. 아직 속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아니 집주인이 톡 터진 녀석들을 땄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눈여겨본 녀석은 그대로다.
가을은 이렇게 곱다. 가로수는 노란빛으로 갈빛으로 물들어가고 과일들은 붉은빛으로 익어가니 가을은 참 곱다. 그 고운 가을 속에 저 녀석은 담장에 걸터앉아 건너집 감나무에 매달린 녀석들을 보며 누가 감꼭지가 될지 점이라도 치는 것인지 비를 오롯이 맞고 있다. 나도 이제 석류를 사다 술이라도 담을까 한다.
술도 안 먹는 사람이 무슨 술을 그리 담는지 모르겠다며 내심 좋아하는 후배들이 우리 집을 자주 찾는 이유가 아마도 그 술병들을 보며 군침을 흘리고 혹여라도 저 중에 어느 것이라도 맛을 볼까 해서 일 것이다.
석류주를 담는 이유는 아마도 암에 좋다는 말 때문일 것이다. 석류에 들어 있는 에라그산이 항암효과가 있다는 말에 담아서 자기 전 한 잔씩 마셨던 것이 이젠 습관적으로 매년 이맘때면 담고 있다. 그리고 꼭 국내산으로 담는다. 국내산이 신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산을 찾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저렇게 탐스럽게 잘 익은 석류를 보면 군침이 도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