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초상
지난날의 흐릿한 벽으로
손을 집어넣고
몸마저도
용광로의 쇳물처럼
녹아서 흘려버린다.
비존재로서의 존재를 위해
기억이라 불리길 바라는
지우다 만 칠판의
흐려진 글씨를 감싸고 있는
묵은 분필 가루처럼
소매에 달라붙은 병이
춤추듯 바람에 사라질 때
비로소 허무에 빼앗긴 본질을 찾고
비로소 너덜너덜하게 변해버린
늙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섬광 기억일지라도
흐릿한 벽일지라도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은 심리학적 용어로 놀라거나 충격적인 순간을 스냅사진을 찍은 듯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며 수십 년이 지나도 망각되지 않을 정도로 완전하게 표상된 영구적인 기억이라고 한다.
낚시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잊기 위함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집안도 사랑도 모두 힘든 시기였기에 벗어날 돌파구가 필요했고 끝내 가방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나를 버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특정한 무엇인가에 미치는 것이었다.
내 바람은 일본에서의 13개월이 말해주듯 광기 어린 나날들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낚시를 다니며 선생님(일본의 낚시명인)을 만나고 조구의 명인들을 만나며, 그 나라의 낚시를 배우고 또 나름의 방법을 확립해 나가면서 점차 빠져들었고 그 시간 동안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전업 낚시인"이라는 이름이 나의 직업이다. 말 그대로 낚시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고기 잡아서 먹고 삽니까?"라고 묻는다. 어찌 보면 그도 맞는 말이다.
"그럼 어부 아닙니까?" 그것은 아니다. 어부는 그물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선상이라는 독립적인 공간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프로 활동을 하면서 1년에 국내 프로대회 11 게임, 단단히 일본의 메이저 대회 2~3 게임을 하고 스폰서 회사를 두고 있는 말 그대로 전문 낚시인이다. 낚시에 관련된 글을 쓰고 방송을 하며, 강의를 하는 전문인이다. 아주 생소한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게 해 준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기억이란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에는 낚시 이것 마저도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는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이 든다.
그 무서울 정도로 집요한 그것...
그것이 살고 있는 곳의 울타리는 너무도 견고하여 그 속에 있는 그것을 밖으로 꺼내기란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이젠 알기에 포기 아닌 포기를 하고 살아간다.
그래 너는 그 속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라. 나는 이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 것이니까.라고 다짐을 한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위로하기 위한 최면 의식 같은 것이다.
나는 기억을 사랑한다. 고로 기억이 나를 지켜준다.
나는 세상을 사랑한다. 고로 살아갈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매일 되뇐다. 아니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어느 바다 이름 모를 갯바위에서 또 집중을 하고 있을 나를 떠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