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내린 날

by 한천군작가

두터운 서리 무게에

주눅 들어버린 쇠털 같은 풀잎

긴 바람에 시릴까 안타깝고

외론 달 돌아보니 숨어

새벽 바다에 빠져 버렸나

주리고 마른 마음도 숨겼나.



서리 : 맑고 바람 없는 밤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지면이나 땅 위의 물체 표면에 닿아서 잔 얼음으로 부옇게 엉긴 것

서리가 내리면 더 이상 가을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 생김이 마치 잔설이 내린 듯하여 그리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서리가 내리면 그 아침은 너무도 아름답다. 특히 피라칸다(Pyracantha)의 붉은 열매가 서리를 맞은 아침은 더욱 붉어 빛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붉음은 단풍과는 다른 붉음이라 새벽을 가로지르며 수평선으로 해가 솟아오를때 처럼 붉다. 어느 집 울타리에도, 어느 집 담벼락 아래에도, 공원의 산책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니 언제나 다가오는 가을을 닮아 있다.

berry-1238073_1280.jpg 피라칸다(Pyracantha)아쉽게도 서리 맞은 사진이 없다.

서리 내리면 더 이상 잡아 둘 수 없는 가을을 못내 아쉬워한다. 옛 선조들 역시 가을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서리를 시에 담기를 자주 하였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에서도 그렇다. 마치 서리 내려 단풍이 봄꽃보다 붉다고 표현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 아름다움이 첫눈에 덮일까 하는 애절함 역시 담으려 하지 않았을까.

가을은 이렇게 속절없이 가는데 아직도 그 가을을 보내지 못하니 어서 첫눈이라도 내려야 나 역시 가을을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멀리 한기 도는 산을 오르니 돌길은 가파른데
흰구름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있다
수레를 세우고 앉아 늦은 단풍숲을 즐기니
서리 내려앉은 단풍 2월 봄 꽃보다 붉어라

두목(杜牧)의 산행(山行)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인 두목(杜牧)의 시다. 아름다움은 곁에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 주고 그것을 틈틈이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쌓은 그 시절의 풍류객들의 마음이 부럽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