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아침이 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토비는 길게 기지개를 펴고 크게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고 나와 눈 맞춤을 하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마도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함이던지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사투가 마치 풀 한 포기 없는 여 덩이 위에서 아주 천연덕스럽게 구름을 지워버리고 바람을 멈추게 하여 아래위를 모두 푸른색으로 바꿔버린 그 순순함을 가장한 잔인함 속에서 지긋지긋한 관성을 밀어내려고 한다.
킴의 미소와 반가움의 인사에도 나는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으며 하얗고 하얀 천장은 긴 겨울밤을 무사히 잘 견디었구나 하며 기다랗게 잘 빠진 형광등들을 일열로 줄 세워 아침 점호를 하는 듯 켜져 있음이 오늘은 숨 막힐 것처럼 정확함에 몸서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토비를 찾기 위함이다. 이젠 이 녀석이 없음 속임수 가득한 세상에서의 해방도 없을 것이니까.
툭하고 누군가 어깨를 쳤다. 아주 맑은 눈을 가진 소녀였다. 열 살이 채 안돼 보이는 작은 소녀였다. 나는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려고 하는데 소녀의 손이 내 눈앞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손에 들려 있는 잘 접은 쪽지를 내밀고 난 어리둥절해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소녀를 한동안 바라보고 머리로는 쪽지보다는 먼저 신경 쓰이는 것이 하얀색 비니를 쓰고 환자복을 입은 그 소녀는 어디가 아픈 것일까를 먼저 떠 올렸다. 한참을 그렇게 이젠 사라지고 없는데도 그곳을 바라보며 긴 생각에 잠겨 았을 즈음 캄이 나를 부르며 약과 물을 내민다.
"뭘 그렇게 봐요?"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내민 약을 목구멍으로 넘기고는 내 손에 잡혀있는 작은 쪽지를 그녀에게 보여준다.
"러브레터?"
손을 가로저으며 고개도 반사적으로 가로젓는 모습을 보며 무릎 위 담요를 가지런히 펴 주고는 미소를 짓고는 소녀가 달려갔던 방향으로 걸어간다.
I spotted you.
Marianne
한동안 뭐지 라는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내 입에서 나온 말에 웃고 말았다.
"조그만 게 까져가지고"
그 후로 한참을 혼자 웃고 있었다.
보석처럼 영롱하다는 말이 어울릴 신비로운 푸른 눈을 가진 Marianne을 처음 만난 것이다.
잠깐 본 그 눈은 마치 고갱이 바라보던 타히티의 푸른 바다를 닮았다. 나는 파페티에서의 노을과 보라보라섬에서의 트롤링 낚시를 기억하고 있다. 그 신비로운 바다를 그래서 그 아름다운 색감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Marianne의 눈은 그랬다. 만약 Marianne이 30대 혹은 그 보다 더 나이를 먹었더라면 나는 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흔들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Marianne을 처음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라는 물음을 던져주고 아니 작은 쪽지 하나를 던져주고는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버린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한동안 나의 숙제가 되었다.
입가에 멈추지 않는 미소가 이상하게 보였을까? 늘 병실 창가에 기대어 서 있는 알렉산더가 갸욱거린다. 그리고 뭐라고 하려다 만다. 아마도 "뭐 좋은 일 있어 이방인."이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까칠한 나를 알기에 그냥 그 궁금증을 묻어버리고 시선을 창가로 옮겼을 것이다. 나 역시 알렉산더에게 "나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나 역시 내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 자꾸만 눈에 아른거리는 총총 걸어가던 모습이 또다시 깊은 미소를 자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