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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Dec 15. 2016

같은 하늘 아래 -14-

겨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나누었던
우리의 여름날
날 필요로 하시던 그대 마음이
두려움을 이겨냈고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작은 바람은
흩어지는 구름이 되었고
떨쳐 버릴 수 없는 그리움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을
같은 하늘 아래의 슬픔입니다.



하늘빛이 흐리기만 한 오후의 창가에는 누군가의 숨소리처럼 가느다란 바람이 스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하얀 편지지가 세로로 앉아서 볼펜을 어루만지고 창밖으로 나가버린 시선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여전히 꼼지락 거리고만 있었다.


연병장 중앙 귀퉁이에 있는 정훈실은 아늑하다. 아지만 숨 막힐 정도로 좁고 작았다. 정훈병의 선곡표를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본다.

"오늘 뭔 날이십니까?"

"왜?"

"오늘 선곡이 왠지 떠나간 연인들의 이야기 같은데요?"

"미친놈"

"하하하 그렇죠 미친놈 하하하"

"듣고 싶은 거 있음 거기다 적어둬 가요로. 오늘은 팝송 싫으니까"

"네"

그랬다. 그도 역시나 연병장 옆을 가로지르는 위병소까지의 길에 날리는 작은 눈발을 본 것이었다.

넓은 연병장에 날리는 눈발을 시아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곳은 하늘빛과 흡사한 모습이었기에 자세하게 들여다봐야만 날리는 눈이 보였으니 보기를 포기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병소로 이어진 길에는 구 시월에 그렇게 애를 먹이던 플라타너스가 줄 지어 앙상한 가지를 보이고 있었기에 날리는 눈이 아주 조화스럽게도 잘 보였다. 

"오후에는 저 눈을 쓴다고 빗자루 부대가 출동을 하겠군"

혼잣말을 하며 조금 더 굵어진 눈을 맞으며 걸어간다.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그는 본부중대 행정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공중전화를 보면 지금도 설렌다.

그 시절 유일한 소통수단이었던 공중전화에 줄을 서 있었던 기억들이 텅 빈 공중전화 박스에 고스란히 쌓여 있기 때문이다. 간혹 깨진 유리를 보면 마치 지난 기억의 단상들이 조각나 버린 듯해서 아프기도 하다. 

조각들이 찢어버린 사진 조각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슬퍼하는데 아무도 그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연인들도, 구부정한 허리의 할머니도,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애기엄마도 모두 그것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는 듯 아니 그것의 존재도 잊고 있는 것인지 모두 그냥 지나친다.

전화 한 통이면 KT에서 누군가 나와서 저 조각들을 치우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조작들이 너무 많다. 결국 내 기억의 파편이라 여기며 마대자루와 빗자루를 들고 다시 그곳으로 가 쓸어 담았다. 진하게 여운이 남아 있는 기억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 기분으로 그렇게 쓸어 담았다.

누군가에게는 이 자리가 만남의 자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한 장의 카드를 통해 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해 들으며 울기도 웃기도 하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이젠 점점 사라져 가는 저것들을 보듬고 싶어 진다.

빨간 공중전화기, 녹색, 그리고 입대 전까지 사용을 했었던 일명 D.D.D(Direct Distance Dialing) 공중전화기는 찾아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동전이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 공중전화기가 늘 곁에 있어 좋다. 꾹꾹 누르던, 뚜 하고 신호가 가고 딸깍 거리며 여보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설레었던 그 시절 그 기억들이 좋다.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렸으면 하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그 시절 누군가를 기다리며 호호 불러가며 손을 비비며 바람을 피해 들어갔던 그 공중전화 박스처럼, 그리고 거리에 흐르던 음악이 있었던 그 거리가 오늘은 참 그립다.

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
난 아주 먼길을 떠난 듯했어
만날 순 없었지 한번 어긋난 후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있는 먼 그대
난 끝내 익숙해지겠지
그저 쉽게 잊고 사는 걸
또 함께 나눈 모든 것도
그만큼의 허전함일 뿐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만남을 준비할까
하지만 기억해줘
지난 얘기와 이별 후에 비로소 눈 뜬 
나의 사랑을

윤상의 이별의 그늘.

https://youtu.be/QkqUpRAhL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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