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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May 05. 2020

율리시즈의 항해

Ulysses...


경험의 바다
이성의 파도
표류하는 언어
정복당하는 글 속으로
오늘도 항해를 하는
나의 율리시즈여

멋있는 바다
멋있는 항해
수평선에 걸린
작은 수직의 글들이
오늘의 하늘과 만나
나의 율리시즈를 부른다

어느 계절의 바다
잃어버린 섬
가질 수 없는 마음속의 섬
그 섬에는
자유의 함성으로
노래하는 율리시즈가 있다

나의 율리시즈
나의 감춰진 언어
나의 표류당한 글
나의 정복당한 글
나의 죽어가는 언어를
율리시즈는 노래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Odyssey)>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타카(Ithaca)의 왕이며 페넬로페(Penelope)의 남편이다. 용감하며 지략이 뛰어난 장군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木馬) 안에 군사를 숨기는 계략을 써 그리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오디세우스(Odysseus)’의 라틴어 이름이다.

글을 쓴 다는 것은 나를 들어냄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 잠들어 있는 자아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글들이 나를 나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글 속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혹은 그것으로 인해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한동안 글을 멀리하며 살았다.

아니 습관적으로 메모를 하긴 하였지만 그것을 조합할 힘이 사라진 뒤였다.

슬럼프라고 할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나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름의 표현으로 글꽃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것으로 하루하루가 행복하기도 하였다.

" 왜 책을 내지 않으십니까?"

이 물음에 늘 미소를 먼저 짓는다.

그리고 말한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라고.

"꽃 글을 서점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내게 꽃은 그리움이다.

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날 지난 시절에 멈춰버린 나의 젊음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한 세상 아름다운 꽃으로 남아있다.

나의 그리움을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비추기엔 나의 거울이 너무도 작아서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이 과연이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들기도 한다.


대인기피.

공황장애.

어쩌면 나는 그런 것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몇의 짧은 글로 인해 팬을 부러뜨리고 노트북을 던져버리기도 하였으니...

그것이 글을 멀리하게 된 동기가 아니었을까.

다시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무뎌졌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무뎌진 마음으로 쓰는 글이 독자에게 잘 전달이 될까?

무뎌진 글이 온전한 느낌으로 전달이 될까 하는 맘이 먼저 든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무뎌진 글만 쓰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날이 선 글을 쓰고 싶어 진다.

날 선 글이 독자에겐 느낌 좋은 글로 남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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