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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Feb 02. 2017

He'll Have To Go

음악이 있는 이야기  내가 너를 부를 때 -8-

익숙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익숙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로등이 켜져 있고, 간간히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있고, 어둠이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며 곁에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순간을 그 길에 저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깍지를 낀 손을 흔들며 걷고 있다. 어제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매일 밤 그 여자를 바래다주러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둘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밤이 만들어 준 검은 비단을 만지고 바람을 보고, 마시며 걷고 있다.


그 남자 : 여기 앉을까?

그 여자 : 모기 없겠지?

그 남자 : 모기?


그렇게 갸웃거리던 그 남자가 급하게 주머니를 뒤진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하나씩 불을 붙이고 그 여자의 주위에 하나씩 꽂아 둔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그 남자 : 이러면 모기가 못 오겠지. 모기향 대신이야.

그 여자 : 그런데 나 담배 냄새 싫은데.

그 남자 : 음.... 바람이 아래로 불어주니까 냄새가 조금은 들 할 거야.

그 여자 : 그런가.


그 여자는 그런 그 남자의 배려가 좋았다. 그리고 그 남자의 자상함이 좋았다.

두 사람은 자정이 될 때까지 그렇게 작은 잔디밭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고,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을 보며 그렇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바람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먼 훗날 그 남자는 이 자리에서 밤을 지새울 것이란 것을 모른다.

이 자리가 얼마나 그 남자에게는 슬픈 추억이 되어 버리는지도 모른 체 그 여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Glenn Medeiros -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신청곡으로 주셨는데 괜찮다면 84년 George Benson의 원곡을 준비해도 될까요?

이 곡은 George Benson의 곡인데 하와이 출신의 17살 Glenn Medeiros가 불러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인데 오늘은 George Benson의 목소리로 준비를 합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 남자는 자꾸만 출입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올 시간이 되었는데 하며 문이 열릴 때마다 그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오랜 시간 못 본 것처럼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그 날 이후로 그 남자는 자신의 사랑이 더욱 깊어져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문이 열리고 떠 문이 열려도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음악이 끝나고 그 남자는 마이크 볼륨을 열었다.


" Let's go train music과 함께하고 있는 현재 시간 7시 3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음... 오늘 차범근 선수의 은퇴 소식이 전해졌는데 혹시 기사 보신 분 계신가요? 분데스리가에서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308경기에서 98골을 기록하였다고 하죠 풍운아의 귀환을 어떻게 봐야 할지... 자 이어지는 곡은  Paul Anka - My Home Town입니다.

아마도 차범근의 소식을 전하고 난 후라 이 곡을 선곡하지 않았을까요? Diana나 You are my destiny 같은 곡을 선곡하는데 이래적으로 그의 통통 튀는 곡으로 대신합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출입문으로 그 여자가 들어왔다. 그제사 그 남자의 얼굴이 펴지며 미소가 그려졌다. 그 남자의 뒤에서 그 여자가 조용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 여자 : 나 늦었다고 삐진 거 아니지?

그 남자 : 삐진 건 아닌데 혹시 그 일 이후라 너 맘이 변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지.

그 여자 : 이것 보세요. 안 바뀌거든요. 내가 선택한 사람은 너거든요.


그 여자가 그렇게 말을 하고 웃으며 그의 곁에 가서 앉았다.

선택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에 그 남자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 남자는 잘 알고 있기에 괜히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한다.



밤은 깊어가고 유난히 별이 많은 날에 두 사람은 여는 날과 다름없이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그들은 그렇게 가고 오고를 반복하였다. 함께 한 시간이 짧은 날은 더욱 그렇게 아쉬워하며 걸었던 것이다.


그 남자 : 이제 들어가야지.

그 여자 : 싫어 조금만 더. 응


그 남자 역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잊어버리고 초 가을로 향하는 밤을 그렇게 걸었다.


그 남자 : 왜 우식이 형이 그렇게 했을까?

그 여자 : 솔직히 난 왜 결혼 대상이었는지 모르겠어. 나에게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그 남자 :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혼자서 그런 마음을 먹고 친구들에게 그런 발표를 했을까?

그 여자 : 모르지. 어머니께서 연세가 많다는 이야긴 했었지만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말에 갸웃거리며 그 날을 떠 올려 봤다. 그리고 혼자만의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분명 결혼을 일찍 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나 그렇게 할 계획 속에 그 여자를 대입시킨 것이 아닐까. 그리고 준비가 되면 그 여자에게 고백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그 여자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남자 : 이제 들어가 너무 늦었어.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으로 인해 그 여자가 부모님 눈 밖에 나는 것이 싫었다.


그 여자 : 치 이제 한신데... 나 들어가야 해?


그런 그 여자가 한없이 귀여웠다. 하지만 그 남자는 함께 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그녀의 등을 떠밀다시피 집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한 동안 그 앞을 지키다 걷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힘든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다시 돌아서서 그곳을 바라본다.


그 남자 : 바보같이 가란다고 가냐.


그 남자는 혼자 투덜거리며 아무도 없는 길을 그렇게 걸어갔다.

내일이라는 해가 떠 오를 것이기에 그 남자는 그 내일에는 많이 웃게 해 주고 많이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아침은 늘 분주하기만 하다.

긴 밤 사이 자신들을 포근하게 안아 주었던 잠자리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청소를 해야 하기에 분주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런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테이블에 있는 소파를 붙여서 침대를 만들어 이불을 깔고 덮으며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과 장난을 치기도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그들 나름의 청춘의 시간을 추억 만들기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남자도 가끔 그렇게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그 여자와 늦은 밤 까지 함께 하는 날이면 그곳에서 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그 남자 : 김치볶음에 밥 먹을 사람


그 남자가 대 여섯의 남자들에게 말을 한다. 씩 웃으며 손을 드는 그 남자들이 밉지 않았지만 그 남자는 또 투정 섞인 말을 한다.


그 남자 : 난 언제나 누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 볼까.


그 남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내실로 들어갔다.

뮤직박스에서는 종구가 시스템 전원을 넣고 한 장의 LP를 걸어 두고 나온다.

Jim Reeves - He'll Have To Go가 흘러나오고 그 남자는 내실에서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하루가 밝아 왔다.

당신의 달콤한 입술을 전화기에 좀 더 가까이 대 보세요.
마치 단 둘이만 있는 것처럼 생각해 봐요.
난 종업원에게 음악소리를 줄여달라고 말할 테니
당신은 함께 있는 남자 친구에게 얘기하세요.
그는 가야만 한다고  

가사가 참 좋다는 생각을 한 그 남자는 혼잣말을 한다.


그 남자 : 난 오늘 밤 내 시간에 이 노래의 앤서 곡인 He'll Have To Stay를 틀어야지


그렇게 말을 한 그 남자는 정말 그날 밤에 Skeeter Davis의  He'll Have To Stay를 준비했다.

The End Of The World가 아닌 He'll Have To Stay를 말이다.

여전히 김치를 볶는 그의 입에는 Jim Reeves - He'll Have To Go가 저도 모르게 흥얼거려졌다.

Glenn Medeiros -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1987년에 다시 히트를 시킨 곡.
1985년 George Benson이 불렀을 때도 특유의 감미로움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6살의 나이였던 미소년 Glenn Medeiros의 곡이 더욱 사랑을 받았다.

Paul Anka - My Home Town
아주 통통 튀는 느낌의 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Diana, You're my destiny, Crazy love와는 다소 다른 느낌의 곡이다. 하지만 그 시대적 배경에서 본다면 롹엔롤적인 면도 가지고 있어 좋은 곡이다.

Jim Reeves - He'll Have To Go
1956년 공존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곡으로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청해 들었던 곡이기도 하다.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컨츄리와 팝을 절묘하게 섞은 듯한 크로스오버 가수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가수이기도 하다. 야구중계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기도 했고, DJ도 하였다.
안타깝게도 1964년 비행기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비운의 가수이기도 하다.

Skeeter Davis - He'll Have To Stay
Mary Frances Penick이라는 본명을 두고 1950년대에 데이비스 시스터즈에서 데이비스라는 이름을 차용했으며, 그녀의 할아버지가 붙여준 닉네임- 마치 모기처럼 웅웅 거리며 노래하면서 쇼맨십을 발휘했다는 의미인 스키터를 조합해서 스키터 데이비스라고 자신의 예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The End Of The World라는 곡으로 더 잘 알려진 그녀가 He'll Have To Go의 답가로 부른 곡.

https://youtu.be/_tg1IGrgM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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