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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Feb 27. 2017

早春(조춘)

새털처럼 가벼운 바람이

갓난쟁이 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온다


찬 서리 마른 잎에 내려

덧칠을 하는데

매화 꽃잎이 내려 장난을 친다.



이른 봄에게 말을 걸어 본다.

넌 언제 온 것이며 왜 말없이 그리도 아장거리며 온 것이냐.

겨울이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너는 벌써 온 것이냐?

풋사과향기와 같은 아침에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이슬 한 방울에게 손 내밀고,

그것이 떨어질까 아쉬워 그 자리에서 손 받침을 하였다.

시간은 기다림이란 것을 안겨주지만 그 기다림이 결코 황홀하지 못 한 기다림도 있다는 것을 알까?

한 때 기다림은 무서운 것이었다.

주금을 위한 기다림이었던 긴 투병의 시간들이 그러했다.

검은 그림자가 매일 아침 나를 깨우며 비웃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던 그 시간들이 지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아침은 상쾌하지가 못하다.

마치 그때의 연장선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하여 더욱 그런가 보다.

매화가 하얀 꽃잎을 소복하게 쌓아가고 마치 지상의 어느 한 곳에만 비단을 깔아 둔 것 같은 곳에서 만나는 아침인데

왜 이리도 그 아침이 겁이 나는지 모른다.



봄은 이렇게 어이없게도 곁에 와 있었다.

주머니 속 추억을 한 움큼 잡았을 때, 그러다 흘려버린 그 하나가 작고 앙증맞은 봄 꽃 위에 주저앉아 버리면

그래 너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구나 한다.

매화가 지천이던 그 날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보았고, 흐르는 섬진강 물 빛이 꽃잎에 놀라 푸르던 그 날

그래서 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구나 한다.

추억은 저 마다 자기 자리가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달았다.

이제 그것들을 모두 제 자리에 두고 와야겠다.

그래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은 광양에서 마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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