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천군작가 Jun 26. 2017

같은 하늘 아래 -34-

넓은 수국의 잎새가 떨려옵니다.
아름드리 나무도
잎새 하나 없는 앙상한 뼈대로
실개천을 끼고 앉은
들녘으로 눈을 돌리고
오랜 시간
가슴속에 박제되어있던
그대에게
가을을 던져 주려합니다.
그대 하늘에게도...


수국이 피는 계절이면 마음은 바삐 움직인다.

마치 가을이란 놈이 벌써 다가선 것인가 하며 돌아보기도 하며 마음이 분주해진다.


강원도 철원의 여름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찌는 듯 더운-미끌 거리는 몸은 시원한 바람을 사랑하려 하고 나무는 이미 색이 변하기도 전에 잎을 떨구어 내고 있었다. 까까머리 군인들은 싸릿대를 자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며 구슬땀으로 온몸이 젖어 버리는 계절이 수국이 피는 계절이었다. 그들이 준비한 싸릿대는 싸리비가 되어 그해 겨울 연병장에 쌓인 눈을 지우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눈 감고 떠 올리면 그 풍경들이 마치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하게 그려지고 밤이면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쓰곤 하였던 기억도 함께 얼룩이 진다.

부산 태종대의 태종사에는 이미 수국 축제가 시작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 아름다운 색감의 소담한 꽃을 보기 위해 많이들 찾을 것이다.

맑은 날이면 태종대 전망대에서 멀리는 대마도를 볼 수 있고 형제섬, 나무섬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생도 일면 주전자섬까지 볼 수 있으니 그 바다가 하늘을 닮지 않고 검푸른 것이 아마도 하늘을 시샘하여 그렇지 않을까?

조금 더 걸어가면 목을 길게 빼고 바다를 바라보는 등대가 있고 그 길을 돌아서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곳이 수국으로 유명한 태종사가 나온다.

강원도에서 보았던 수국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때의 수국은 온전히 그림이 응어리져 핀 꽃으로 보였다면 태종사의 수국은 사랑스럽게 핀 꽃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하늘 아래에서도 이 부풀어 올라 터지는 꽃을 그 누군가는 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그러할까?

1991년의 여름은 그렇게 찌는 듯 더웠고 구 해에 만난 수국은 편지와 같았다.

한 통의 편지를 받으면 그 꽃도 한아름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저기 저 파스텔톤의 수국이 내게는 편지로 보인다.

여건히...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만나는 내 아련한 추억의 편지로...

매거진의 이전글 같은 하늘 아래 -3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