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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Nov 08. 2017

그리운 꽃의 書 - 88 - 국화 예찬

늦은 바람에 허리 굽힌 꽃

저 홀로 시름 잊으려 고개 숙였나

연객(烟客)은 단정한데

서리를 능멸하는 모양이

가을 그림자로 낙엽 속에 향기 진다.

서리 맞은 배추밭에 나비 날아들고

곁눈질로 벌을 유혹하니

배추 잎 시샘하듯 푸른 잎 다무는데

야국은 정조(正祖)의 용포(龍袍)를 닮아

한 잔 술이 되었고,

마른 풀이 애처로웠는가

떨어진 낙엽이 시린 가슴인가

황국은 황금 술병이 되고,

백옥 같은 국화는 가을 달을 닮아

향기로운 밤이었구나.


가을이면 노란 국화 앞에 앉아 너무 일찍 온 것은 아닌가 라는 말을 속삭인다.

아마도 너무도 빠른 세월 탓이 아닐까.

올해도 어김없이 국화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꽃구경을 나서질 못하고 있으니 마음 한편이 복잡하기만 하다.

그 마음 달래려고 국화차 한 잔에서 울어 나는 향기에 복잡함을 씻고 집 앞 도로에 줄지어 선 국화를 창 넘어로만 본다.

예로부터 국화는 가을을 알리는 꽃으로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꽃이었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국화 그림을 보면 꽃은 엷은 먹으로 너무도 부드럽게 그리고 실화를 보는 듯 진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잎은 마치 깊은 밤 국화를 대하는 듯 뚜렿하게 보인다

국화 그림 중 필자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으며 그 만의 독창적인 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그림에서 보듯 마른풀과 짙은 잎은 서로 대조를 이루며 조화롭게 보인다.

이는 농담에 강약을 주어 마치 향악을 연주하듯 한 느낌이 살아있는 꽃을 대하는 듯하여 좋아한다.

 

18세기 문인 화가 연객(烟客) 허필(許佖)의 그림을 보면 너무도 단정한 느낌에 마치 조선의 선비를 보는 듯하여 좋다. 이 그림 역시 강약이 좋으며 사실적인 이미지를 기리려고 노력한 그의 마음이 보여서 좋다.

허필은 시 읊기를 좋아했고 전서와 예서에 능했던 허필은 갖가지 국화를 줄지어 심어놓고 꽃 사이를 거닐며 세상일을 묻지 않았다고 하니 선비와 국화는 친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른 가을날이 저물기 전에 국화향을 품에 품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머물지만 그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창 아래 국화를 눈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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