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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Nov 09. 2021

기획자 부부가 '마블'을 챙겨보는 이유

*이터널스 등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 그래서, 이터널스는 재미없었지?


나는 주로 평일에 영화를 본다. 작년부터는 코로나로 극장에 발길을 끊었는데 꼭 봐야 할 영화들은 챙겨보고 있다. 그게 바로 MCU 시리즈다.


구이부부는 마블을 좋아한다. 덕후라고 하기에는 모자라지만, DC보다는 마블을 더 좋아하고, 챙겨본다. 이님은 오리지널 코믹스를 보며 자랐고, 나는 아이언맨으로 MCU를 시작했다.


구 : 응, 지루하더라. 심지어 중간에 핸드폰으로 시간도 확인했어. 근데 안 보면 안 될 거 같아. 재미없다고 평가받는 토르 1편(토르: 천둥의 신)이나 캡틴 아메리카 1편(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이 결국 어벤저스 시리즈의 토대가 되었던 것처럼, 이터널스도 다음 세계관의 중요한 토대가 되지 않을까 싶어. 결국은 이해하기 위해 봐야 할 시리즈로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그런데 이터널스는 원작에선 어때?



나는 마블 영화를 보고 나면, 이님에게 원작 이야기를 묻곤 한다.


나는 포토티켓을 꼭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늘 이런식으로 찍어둔다.


이 : 나도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원작에서는 태초에 셀레스티얼은 지구에 와서 세 종족을 만들었고 그게 '이터널스, 데비언츠, 인간'이야. 이터널스는 천상, 인간은 지상, 데비언츠는 지하에서 지내게 하지. 그래서 이터널스는 신의 존재로, 데비언츠는 데빌의 존재로 돼.

구 : 아, 그래서 이터널스에서 테네가 아테네랑 이름이 비슷하고,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는 '에로스'도 나와. 타노스 동생이라면서.

이 : 그게, 타노스도 원래는 이터널스거든.

구 : 헐, 그런 거야? 그런데 어벤저스까지 세계관이 거의 10년 걸렸잖아. 그럼 지금 세계관도 거의 10년 바라보고 있겠네?

이 : 그렇겠지? 그런데 이터널스 원작에서는 아직 아이언맨이랑 캡틴 아메리카가 살아있어. 그래서 영화에서는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어.

구 : 그럼 원작에서 어떤 내용을 넣고 뺄지 이걸 미리 다 만들어 놨다는 거잖아. 와, 케빈 파이기 미친놈.. 진짜 대단하다.



이님을 운전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이것저것 물어봤다. 우리의 마블 이야기는 30여 분간 계속되었다. 중간중간, 카시트에 앉아 있던 아이는 '헬로 카봇' 세계관을 이야기하며 우리 이야기에 슬쩍슬쩍 동참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아이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 부탁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이님과 카시트에 앉은 아이와 함께 대화를 하고는 한다.



이 :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지금 스파이더맨이 다시 소니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어.

구 : 엥? 그게 무슨 말이야.

이 : 베놈 2편 마지막에 톰 홀랜드가 나왔어.

구 : ㅇㅅㅇ 엥???

이 : 그래서 지금 난리야. 스파이더맨 어떻게 되는 건지. 이번 시리즈가 진짜 중요할 거야.



주로 이런 식이다. 이님은 영화를 볼 시간이 없으니 대신 내가 줄거리를 들려주고, 그럼 이님은 원작과 뭐가 다른지,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도는지 들려주고는 한다. 나는 DC 시리즈 중에서는 놀란 감독의 배트맨 말고는 보진 않았는데, 이님은 DC도 거의 다 챙겨보고는 한다.


나는 DC가 정말 재미없는데 (.. ) 이님은 사람들이 보지 말라고 하는 것도 거의 다 챙겨본다.

그 이유는 기획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이유도 우리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기획자라는 직업 때문이다.


기획자는 대중문화와 유행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업이다. 최근 문화적 이슈, 밈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브랜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늘 안테나를 세울 수밖에 없다.


이 : 진짜 이런 걸 모르고 싶어도, 계속 알아야 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 써먹잖아.



나는 선택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지만, 이님은 유행한다는 것들은 거의 다 스치더라도 들으려 한다. 특히 가요. 마케팅 기획을 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이슈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만 모델이든 협업이든 기업에 적합하게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TMI로, 나는 호기심으로 가수나 배우 등 셀럽들의 섭외비나 모델료를 물어보기도 한다. 그것으로 가수나 배우들의 인기도를 알게 된다.


반면, 나는 조금 다른 결의 정보를 수집한다. 패션이나 뷰티, 식품 등 주로 소비재에 관심을 가지고, 소비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자체에 주목하는 편이다. 이님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면, 나는 관련해서 알고 있는 트렌드를 이야기하고는 한다.


지난 일요일, 이님이 주말을 반납하고 럭셔리 브랜드 제안서를 쓴다기에 식사하며 브랜드에 관련된 이슈와 트렌드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누었다.




부부가 기획자이다 보니 취미가 곧 자료가 되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것들이 곧 취미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금은 아이가 있어 이전에 비해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하는 '발품'은 줄었지만, 오히려 우리가 주로 찾는 호텔이나 육아 시장 트렌드에 대해서는 또 자연스레 흡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이님의 경우, 호텔이나 육아용품 브랜드와 함께 할 때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으로 상대방에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육아 시장을 바라보는 분들은 내가 엄마이자 기획자라는 이유만으로 협업을 제안하고는 한다. 이님이나 나, 우리 자체가 소비자이자 전문가가 되는 셈이다.


삶과 일이 함께한다는 것은 꽤나 피곤하다. 그래서 누구 한 명이 녹초가 되었을 때는 일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주로 맛있는 녀석들을 본다)을 틀어놓고 낄낄거리며 머리를 쉬어준다. 하지만 결혼부터 예산서와 일정표를 짜며 진행했던 우리 부부이기에 이런 일상이 서로에게 꽤나 자극이 되고, 좋은 자료원이 되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곧 출시할 디즈니플러스도 구독할 예정이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나왔던 마블 TV시리즈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야 MCU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혹시 모를 기회에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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