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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Mar 07. 2018

뭘 그렇게 어렵게 사냐.

[영화리뷰] 고향의 맛,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사람들이 너처럼 살아야 하는데 말이지.


얼마전 결혼식장에서 자동차 한대를 가지고 벤치에서 즐겁게 노는 아들을 바라보며 툭 내뱉은 말이었다.

내 아들은 세상에 나온지 이제 막 2년이 지났고, 생각은 많지만 말로 표현하는데는 아직 서툴다. 하지만 그에게도 갖고 싶은 것도 있고,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들이 많진 않다. 그때 그때 본능에 충실히 따르며,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과 시간을 보낸다.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어 한참을 보낸다. 어쩜 그렇게 할 수 있지? 정말이지, 세상 사람들이 다 서후(아들의 이름이다)만 같으면 싸울 일도, 화낼 일도 없겠다. 조금 무료할 순 있겠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딱 그렇다.

복잡한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주인공을 보며, 어딘가 서후와 닮은 듯 하다. 먹고 싶을 때, 자고 싶을 때 본능에 충실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인공 혜원. 물론 그녀는 일도 하지만.


혜원의 하루를 따라가다보니 아, 맞어 그래서 내가 한번씩 집에 가고 싶어 했어. 그래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들이 훅~ 하고 들어왔다. 본능에 충실한 아들 생각에서 어느 덧, 내 자신과 삶에 대해 생각하며 영화를 따라가고 있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늘 나보다는 아들 생각을 먼저하게 되었는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본래 나도 시골(까지는 아니고 나름 읍민이지만) 에서 살았던 터라, 도시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지만 뼛속 깊은 곳에는 촌스러운 인자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음식에서 더욱 그렇다.  

파스타와 피자와 빵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건 단순히 흰쌀밥이 싫기 때문이다. 세상 제일 맛없는게 흰쌀밥이다. 밥에는 흑미라도 잡곡이 섞여 있는걸 좋아하고, 김치는 오히려 사먹더라도 고추장, 된장과 같은 각종 조미료는 도저히 사서 못먹겠더라. 자취할때도 엄마한테 고추장만큼은 꼭 보내달라 하였고, 지금도 양가 엄마의 도움을 받아 양념장은 꼭꼭 챙겨놓고 있다.


예쁘게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혜원(김태리) @리틀포레스트



이렇게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번씩 고향에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다.

도시의 미세먼지를 피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있는 곳은 눈 앞에 논이 펼쳐 지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로 10분만 나가면 들판이 펼쳐져 있고, 계곡을 바라보며 뜨끈한 닭백숙을 먹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마트도 브랜드 마트가 아닌, 동네 마트지만 물건들은 오히려 백화점 수준이라 싱싱하다. 아, 딸기나 사과 같은 과일은 농장에서 직접 받아서도 먹는데 혜원이 씻지도 않은 과일을 막 따내어 먹듯이, 정말 씻지도 않고 한입 베어 먹으면 꿀맛이 난다.

고향에서 나름 유명한 사과, 딸기, 거봉만큼은 아빠한테 보내달라고 하기도 한다. 일단 사이즈가 다르니깐.


첫 자취를 하면서 정말 이상했던 건, 과일을 쉽게 못 먹게 된 것이다. 과일이 그렇게 비싼 줄도 몰랐고, 자취생에게 과일은 정말 최고의 사치품이었으니깐. 매일 밤마다 먹던 제철과일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엄마밥보다도 더 아쉬웠다.


아는 맛이라 더 괴로웠다. 아, 고향의 맛이여! @리틀포레스트



'리틀포레스트'에서는 자급자족 생활을 하다보니 육고기나 어류는 재료로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 난 고향의 맛이라고 한다면 '한우'를 최고로 꼽는다.

서울에서는 비싸니깐 한우를 잘 못먹는데 그것보다도 왠지 맛이 없다. 아빠엄마가 나에게 먹인 고기들이 정말 맛있는 고기라는 걸 나는 자취하면서 알았다.

지금도 거창(아, 내 고향은 경상남도 거창이다)에 내려가면 제일 먼저 찾는게 고기다. 한우도 한우고, 삼겹살도 정말 맛있다. 왜 더 유난히 맛있을까. 엄마아빠가 사준 고기라 그런가.




'리틀포레스트'를 두고 힐링 영화라고들 한다.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도 많이 하겠지.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조금 달랐다. '역시, 집은 집이지'. 도시가 집인 사람들은 시골의 생활이 힐링이겠지만, 나처럼 타지에서 삶의 터전을 도시로 잡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시골의 풍경이 '향수'로 다가온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도시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잠들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잠들고. 물론 지금은 백수의 시간이라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도시는 도시니깐. 즐길거리도 볼거리도 많아 매력이 넘치는 곳이지만 어쩔 때는 그런것들이 다 피곤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뭐 하려고 그렇게 살아. 그냥 좀 단순하게 살자.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아. 그냥 좀 쉬면 어때.


도시의 삶은 여전히 좋다. 문화 감성을 끊임없이 채워줘야 살아가는 나이기에. 그런 것들 때문이라도 나는 시골보다는 도시의 삶을 원했고 지금도 좋다.

하지만 한번씩 고향이 그리울때가 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축 늘어지고 싶을때. 집밥 먹고, 놀고, 혜원이가 고향친구들을 만나듯, 나도 고향친구 만나서 수다떨고. 그러다보면 하루가 훌쩍 가있는 그런 삶.

특히 엄마가 되고나서는 더더욱 엄마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오랜만에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준 영화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왔던 나에게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나에게, '괜찮아 잠시 쉬어가도' 라고 말해준 고마운 영화였다.


3월 말이면 집에서 일주일정도 시간을 보내고 올 예정이다. 여기보단 아랫쪽이라 3월말이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이리라. 서후도 미세먼지를 피해 신나게 놀 수 있을테고, 나도 아빠따라 엄마따라 좋은 공기 마시며 맛있는 것 잔뜩 먹고 와야지.


나만의 숲에서, 고향의 맛을 실컷 맛보고 와야겠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와 같은 '맛있는 영화'를 찾는다면?

https://brunch.co.kr/@guabb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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