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나왔다는 거 말고
유퀴즈에 차주영 배우가 나왔다. 그가 10년차 배우라는 것은 전혀 몰랐다. 하긴 이렇게 지독하게 잘 하려면 내공이 쌓여야 나올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저번에는 ‘나는 반딧불‘의 황가람 가수가 20년의 무명 생활을 버텨낸 이야기도 나왔다.
삶이 길어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26~30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32.4세, 여자 35.1세(평균 33.7세)였다고 한다. 우리는 예전이라면 저승길에 올랐을 때에 취직 길에 오른다. 그래서 직장 생활이 저승과 비슷한 것일까.
늘어난 수명은 인류의 종교가 신에서 돈으로 바뀐 영향이 크다. 이제 우리는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제사를 올리기 보다는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먹는다. 생로병사는 신의 주재함에 의한 불가항력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됐다.
국가는 모두에게 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지만, 그 삶을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몇몇의 개인만이 아닌 모두의 삶이 길어졌기 때문에
삶이 길이가 길어졌다는 건, 단순히 고무줄을 늘인 것일 수 있다.
직업을 가지려고 해도, 이제는 기본이 10년이다. 예전엔 대학만 나와도 직장에서 다 받아줬지만 이제 대학은 기본에 대학원, 유학, 자격증까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결혼과 출산도 뒤로 미뤄졌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늙은 나이에도 괜찮은 상태의 정자와 난자를 확보하거나 젊을 때의 것을 얼려둘 수도 있게 됐다.
자본주의교는 노화는 질병임을 선포했다. 나이 든 상태의 모든 활동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길어진 삶에 따라 경쟁과 지식도 축적되어 가므로, 변치 않는 고전의 진리라고 하는 것도 워낙에 많아 평생에 걸쳐 다 보지 못하고 끝날 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요약해 짧은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쇼츠고 유튜브다.
문제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의 더해가는 지식과 경쟁을 따라가는 것에는 끝이 없다.
예전에는 그나마 물리적으로 모든 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떤 제한은 방향을 잡고 집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제한 없는 ‘언리미티드’ 현 인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됐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존재론적 위기에 처한다. 무지의 심연은 어느 때보다도 깊고 어둡다.
우리는 늘어나는 고무줄을 지켜보고 있다. 늘어나기만 하다가는 끊어진다. 하나의 고무줄로 사는 삶의 방식은 끝났다. 우리는 여러 개의 고무줄을 연결지어야 한다. ‘늘이기’가 아니라 ‘늘리기’로 길어진 삶을 대비해야 한다. 마냥 늘이기만 해서는 얇고 길어질 뿐이다. 결국에는 터질 것이다.
한 고무줄에서의 경험이 다음 고무줄에까지 녹여지도록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무가 말랑말랑 해질 만큼 ‘뜨겁게’ 경험해야 한다. ‘몰입’해야 한다. 유의미한 성장은 넓이가 아닌 깊이에서 나온다.
횡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종적인 깊이를 가진다. 깊어지다보면 결국엔 만난다.
넓어진다는 건 더 많은 것을 선택함과 동시에, 깊이를 포기하는 것 또한 선택한 것이다. 깊이를 포기하면, 하는 건 많은데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불안해진다.
세계가 드넓게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본인의 심연이라는 좁은 구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은 빛으로 뒤덮여 그림자 없이 속속들이 하얗게 밝혀지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는 가장 어두운 곳으로 깊이 내려가 침잠해야 한다. 넓어지는 세계를 따라 늘어지기만 하다가 터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1. 길어진 수명은 죽음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것이 뒤로 밀려났다. 독립, 취직, 결혼, 출산, 승진, 안정…
2. 늘어난 수명으로 삶은 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고, 고무줄 늘리듯 그저 길이만 늘여놓았을 뿐이다.
3. 우리 스스로를 극복해 또 다른 나로 건너가야, 옅어지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의 색, 총천연색으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