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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생이 Aug 23. 2023

03. 소맥, 아니 독서는 때려 넣어야 돼요.

한 기이한 인연 그리고 독서 교육에 대하여


두 번째 만나는 사람과, 시끌벅적한 홍대 술집에서, 소맥을 말아먹으면서도 

얼마든지 우주와 인생과 사람과 그리고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여러분의 대화가 장소나 상황이라는 외부 요소에 구애받지 않기를 바라며. 



선생이는 은주를 ‘서울 파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났다.

은주는 룸메이트인 서진과 페스티벌에 왔다. 그런데 정작 잔디밭에서 땡볕에 익어가며 잔나비 노래를 같이 들은 사람은, 서진이 아니라 선생이였다. 서진은 페스티벌에 도착하자마자 스탠딩석으로 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은주는 선생이의 일행에 스며들 듯 합류했다. 서진에게는 은주가 자취를 감춘 셈이다.     

은주와 선생이는 오후 8시까지 지지도 않는 여름 볕 아래, 김치말이 국수와 물회의 살얼음을 깨뜨리며 장장 8시간을 함께 보냈다. 대체 은주와 서진은 왜 같이 온 걸까?


은주와 서진은 동향 출신의 대학 동기로, 생활 공간을 공유하며 2년간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그렇게 깊이 친하지도 않고, 안 친하지도 않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단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기대도 없는데, 그게 둘을 오히려 결속시켜 주었다.


서진: 나 페스티벌 가는데 같이 갈래?

은주: 그날 별 거 없는데, 그래!”

기대도 없고 그래서 실망도 없는, 이 시대의 최고의 룸메이트 관계 아닐까.     

선생이와 은주


"다음에 홍대에서 같이 술 마셔요."     

선생이와 은주는 여느 사람들처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만나게 될 거라는 강한 예감을 느꼈다. 

선생이와 다현이(1화 출연)처럼, 은주도 매사 진심이었다. 끼리끼리 사이언스라고 했는가.

둘은 한 달 뒤, 진짜 홍대에서 만났다. 마치 ‘나는 이런 말도 그냥 하는 말로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은주의 말처럼 그것은 참 ‘어안이 벙벙’한 사건이었지만, 은주와 선생이는 그러면서도 덤덤히 그 자리에 있었다.      


선생이: 아 진짜 신기하네. 이번엔 우리가 왜 또 여기있죠?ㅋㅋㅋ 서진이는 오늘 바쁘대요?

은주: 몰라요? ㅋㅋㅋ 아시잖아요 저희 안 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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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인연으로 만난 선생이와 은주, 그리고 당신.

오늘은 특별히 교육 밥상이 아니라, 술상에 앉아보자.      



아래는 실제 인물과 대화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은주: 저는 조카가 있거든요. 2명. 이모들이 맨날 그래요. 어떻게 하면 너처럼 좋은 대학교 갈 수 있냐고. 책 좀 읽혀달라고.

선생이: 오 책, 좋죠. 근데 진짜 제일 좋은 건 부모가 책 읽는 걸 보여주는 건데.. 

은주: 그게 제일 좋긴 하죠. 근데 저는 이모들한테 일단 책을 많이 사주라고 해요. 저는 가정적으로 독서에 좋은 환경에 있어 본 사람으로서, 환경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되는 것 같아요. 책에 많이 노출돼야지 ‘보니까’. 아무것도 모를 때는 왕창 때려 넣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애들은 스펀지 같잖아요. 뭐든지 쫙- 흡수하니까. 

선생이: 아~ 지금 드신 그 소맥처럼요?

은주: 아우 그렇죠^^

크~

선생이: 근데 맞아요. 애들이 진짜 스펀지인게, 제 말투 그대~로 따라함.. 아니면 부모님 말투랑 똑같은 애들도 많고.

은주: 맞아. 그래서 일단 모르고 스펀지처럼 빨아당길 수 있는 아이일 때다양한 분야에 독서를 해봐야 되는 것 같아요. 자기 의견이나 생각은 그 뒤에 생길 수 있는데, 그 시기는 지나면 끝이니까. 약간의 강제성이 있더라도?

선생이: 흠, 그러면 나중에 그게 좋았다는 거를 깨달을 수 있을 거 같긴 해요. 근데 저도 너무 독서가 재밌다는 거를 늦게 깨달아서, 한국 독서교육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맨날 독후감 쓰게 하고, 독서 마라톤? 그런 걸로 ‘양’만 늘리는 것 같아서. 칭찬 스티커 주고..    

독서의 '양'과 '질'

은주: 저는 지금은 ‘양’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그 스티커 열심히 모았거든요 ㅋㅋㅋ

선생이: 그래요? 저도 그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까 책 생각하면 뭔가 꼭 다 읽어야 될 것 같고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 꼭 한번에 한 권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여러 권을 읽을 수도 있잖아요. 재미 없으면 중간에 다른 책을 볼 수도 있고. 근데 그 스티커 받으려면 다 읽어 독후감 써야 되니까... 그래서 저는 책 좋아하고 진짜 재밌게 읽게 된 지가 몇 년 안 됐어요. 

은주: 아 진짜요? 저는 좀 원체 지적 호기심이 있었던 사람이라.. 

선생이: 자랑하는 건가 지금?ㅎ

은주: 아니.. 그래서 어쩌다 책을 재밌게 읽게 됐는데요?

선생이: <알쓸신잡>이라고 알아요?

은주: 알죠! 저 유시민 진짜 좋아해요!

선생이: 헐, <어떻게 살 것인가>?!

은주: 오~~~ 당연 읽었지^^

선생이: 역시~ ㅋㅋㅋ 그 알쓸신잡 보는데 그 분들이 나누는 대화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저 대화에 너무 끼고 싶은 거예요. 근데 그 사람들은 다 이미 책을 읽었다는 전제 하에 얘기하니까, 여기 그 책에 나오는 거기 같지 않냐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아 여기 낄려면 책 읽어야겠다재밌겠다빨리 읽고 싶다 이렇게 된 거죠.    

tvN <알쓸신잡>

은주: 아..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럴 수 있겠네요. ㅋㅋㅋ 하긴 다 각자의 경험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런 각자의 생각이 생기기 전에애들한테는 독서도 때려 넣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ㅋㅋ

선생이: 아 양으로 승부하자? ㅋㅋㅋ 술 마시는 거 보니, 정말 언행일치시네.. 계속 때려 넣으시네요..? 광기가 느껴져..

은주: (술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술에 대한 광기가 느껴진다...)    

소맥 사랑 ♡

선생이: 암튼 뭐. 자율성에만 맡기면 한계가 있긴 한 것 같아요. 특히 지적 호기심이 없는 애면은. 또는 그런 시기가 아닐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주변에서 책 읽는 모습, 재밌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쉽지 않으니까.... 근데 또 프랑스 같은 데는 독서 인구 되게 많은데, 독서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저녁 식사 대화에 끼기 위해서 래요. ㅋㅋㅋ

은주: 아 그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그게 제일 좋은 문화인데, 우리나라에서 가능할지.. 어 근데 이거 뭐지..?^^ (은주가 빤히 선생이의 잔을 쳐다본다.)

쪼르륵

선생이: ... 왜 그렇게 킹 받게 보시죠?^^ 저 안 마셨다고 꼽 주는거죠? 

은주: 아니요~ 전혀요?^^ 저 사람들 술 절~대! 안 맥여요. 진짜 절대로.      


은주는 그러면서 다시 한번 더 선생이의 잔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무 말도 않고, 술잔도 자신의 눈썹도 한껏 들어 올려 쳐다보는 표정이, 

가히 가관이다.     


선생이: 아니 그냥 마실게요. 눈썹도 내리고 술잔도 내려주실래요?

은주: ㅡㅡ^ → ^ㅇ^

찌릿 vs ...







독서=부담

독서라는 단어를 만날 때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도 책 읽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착실한 학생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학교에서 분명 ‘책을 읽어야 한다’고 배웠다. 당신은 그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성실한 학생이다. 

나 역시 그런 학생이었다. 책을 읽으면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답과 의도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졌다. 학교에서 그렇게 문제를 내줬고, 그걸로 점수를 매겼으니까. 그러니 독서를 할 때 이 문장의 의도는 뭘까, 내가 찾은 게 틀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글이라는 것은, 읽는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히기 마련이다. 

결국 없는 정답(正答)을 찾으니 찾아지지도 않고, 이게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없는 불안감만 쌓여갔다. 책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고, 나는 점점 책과 멀어졌다. 


공교육에서 길러진 글 읽기 습관

우리는 학교에서 [문학]과 [비문학]을 공부하며 글을 접했다. 글에 딸려있는 오지선다 문제 안에서,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을 찾는 데에 너무나 익숙했다. 그런 부담감을 느끼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상하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교육 아래서 글을 읽는 모두는 언제나 답을 찾아야 했으며이 습관은 어느새 골라야 할 답 없이 혼자서 독서를 할 때에도 이어졌다출제자의 답을 잘 찾아내는 숙련된 ‘기계’들은 자신만의 답을 만들고 문학을 즐기는 ‘인간’이 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해야 하는’ 독서에서 ‘하고 싶은’ 독서로 

내가 의무감과 부담감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나 책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난 후다. 이제 ‘독서’라는 말을 들으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대화’, ‘무한한 세상과의 연결’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무엇이 나를 바꾸었을까? 

누군가의 권유, 스승의 조언, 새로운 독서법, 독서 관련 강연? 

모두 아니다. 나를 진정한 독서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TV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앞서 얘기한 지혜로운 어른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이 어른들은 옛날의 선생님들이나 다른 어른들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든가, 책을 읽으면 뭐가 좋다든가 하는 식의 독서 권유나 설득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서 독서가 너무 ‘하고 싶어’졌다. 


독서는 놀이공원처럼

<알쓸신잡> 1기에서 ‘소설을 왜 읽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소설가 김영하는 답한다.

 

“소설은 감정의 테마파크예요.”


“다양한 코스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 뒤에 나가면 되는 거예요.
문학이라는 것은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보는 거지,
작가가 숨겨 놓은 주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아니죠.” 

김영하의 말을 듣는 순간 책에 눌린 듯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놀이기구를 타고 난 뒤 감상평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 놀이공원에 있는 놀이기구를 전부 다 타야만 한다는 의무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기구,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골라서 타면 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감정을 발견하고,
타인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거예요.

... 어떤 의미에서 문학작품은 
우리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존재하는 건지도 몰라요... 
다른 게 정상이에요.”   


김영하의 말은 비단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독서도 마찬가지다. 

독서는 작가와 독자의 끊임없는 대화다. 일견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비문학 책도, 

‘작가가 나에게 쉽게 설명해주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하는 대화의 관점으로 보면 다르게 읽힌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보도 얻고, 상대와 다른 나 자신에 대한 통찰도 얻는다. 


독서교육은 어때야 할까?

중학교 때 수학 시간이었다. 수학 시간은 수준별 수업이었고 나는 반을 옮겨가 수업을 들어야 했다. 

알지도 못하는 아이의 책상에 앉아, 더 알지 못하겠는 수학 수업을 들었다. 

그때의 낯선 책상 안에는 '나니아연대기'라는 두꺼운 양장본 책이 있었고, 

평소라면 시도해보지도 않았을 책의 책장을 넘겼다. 


수학 선생님의 얼굴에 대한 기억은 비교적 또렷하나 묘사하기는 어려운데, 

짧은 단발에 동그란 안경을 쓴, 회계나 장부 정리를 잘할 것처럼 생긴 옹골찬 여자 선생님이었다. 

학주 등 이른바 ‘탑’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단 있고 무서운 편에 속하는 선생님이었는데, 

나는 부딪힐 일이 별로 없었다. 그날 ‘나니아 연대기’를 펼치기 전까지는.     


지금 보고 있는 거 가져와.”     


순간 얼굴로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주목되는 시선이 너무 부끄러웠다. 

게다가 책의 주인인 얼굴도 모르는 애한테는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선생님은 책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 수업이 끝나고 돌려받긴 했지만, 끽해야 13살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수학 시간 45분 내내 세상이 끝나는 절망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할 수 있었다. 

세상 끝 절벽에서도 끝내 떨어져, 대롱대롱 나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심정이었다.  

    


‘만약에’로 시작해서 ‘모른다’로 끝나는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만약에’로 시작해서 ‘모른다’로 끝나는 생각들을 해본다. 

만약에 그 수학 선생님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관심을 줬다면? 


'책이 재밌어 보였니?’ 

‘나도 그 책 좋아하는데, 지금은 말고, 다음에 읽고 후기 알려줘.'


뭐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오히려 책을 덮고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수포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아니 조금은 늦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선 <나니아 연대기>에 빠져, 옷장을 볼 때마다 

나니아 연대기 속 마법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티켓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교육은 더욱,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에 교육의 호흡은 너무 길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독서 동기를 높일 확률이 높은 것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모습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다


독후감 과제를 내주는 것보다 더 멋진 과제는, 

책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서로의 입장을 가지고 서로 인정하며 

그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말하는 지혜로운 어른들의 대화 장면을 보게 하는 것이다


독서의 선배들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정리하여 이야기하는지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책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책 읽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책에서 깨달은 바를 끊임없이 곱씹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독서를 하고 싶게 하는 방법이고,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 독서를 하게 하는 방법이다

스스로 메모하고, 인상 깊은 구절과 자신의 느낌을 적어가면서 책을 읽는,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바로 그런 독서 말이다.



당신의 숟가락(오늘은 술잔) 얹기 

여러분은 독서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1년에 몇 권 읽기, 나도 모르게 독서 마라톤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책은 왜 읽어야 할까요? 학교에서 독서를 어떻게 가르쳐 주면 좋을까요?

이번에는 숟가락에 술잔 하나도 들고 이리와 앉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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