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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생이 Aug 14. 2023

02. 외국 애들은 운동을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코리아 크레이지! 한국인은 불안해. 뭔가를 안 하면.

운태기를 아십니까?

 여러분은 운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잘해야 한다는 압박, 못하는데 해도 될까 하는 걱정을 한 적은 없는가? 나는 운동을 많이 하지만 운동이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운동이 좋아서 하는 줄로 안다. 그도 그럴 것이, 배구, 헬스, 유도, 배드민턴, 테니스 등 각종 종목을 섭렵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여러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떤 종목이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비가 있다. 바로 ‘운태기’(운동 권태기)이다. 보통 운태기는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넘어가기 전에 온다. 초급반에서는 에이스였는데, 중급반에서는 초짜로 전락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시험공부처럼 운동도 항상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고, 재미도 없어진다.


내가 '달리기'는 하지 않는 이유

 학교에서 했던 ‘달리기’를 떠올려 보자. 출발선에 서서 떨리는 마음으로 총소리를 기다린다.

‘준비~’

‘땅!’

 소리가 울리고 달려 나간다. 잘 달리는 친구들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 있고,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바람을 가른다. 목은 칼칼하고 허벅지가 불타는 것 같을 때, 도착점이 보인다. 친구들은 이미 손등에 1등! 2등! 도장을 받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다. 드디어 도착점에 골인! 손등을 내밀어 도장을 받는다.

‘5등!’

 5명과 함께 뛰었기 때문에 다른 말로는 ‘꼴찌’ 도장이다.

 이후로 나는 위에서 얘기한 다양한 종목을 섭렵했지만, 그 어떤 운동을 해도, 달리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서 매번 꼴찌였고, 못 뛰었고, 그래서 달리는 것이 싫어졌고,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어떨까? 잘하면 즐길 수 있을까?


선생이가 두 번째 교육 밥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선생이와 함께 오늘의 교육 밥상 앞에 앉아보자.


이번 교육 밥상의 메인은 ‘운동’

오늘 식구(食具)는 인생의 절반을 전문 운동선수로 산 다현이와 체대 출신의 체육 교사 경준이다.

다현이: 30대. 여자. 남들의 학창 시절이라고 불리는 그 시절,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 현재는 인라인 스케이트 지도자로 활동 중.    

경준이: 40대. 남자. 초등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어떤 운동을 들이밀든 다 할 줄 아는 만능 스포츠맨. 체육 교육에 남다른 열정과 소명을 갖고 활동 중.     



아래는 실제 인물과 대화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선생이: 다현이님 요즘 축구 시작했다면서요! 축구는 잘 다니고 계신가요?

다현이: 다니고 있는데 잘 안 돼요 ㅠㅠ 오빠 나 그거 알려 줘야 돼. 리프팅!

경준이: 고만 좀 해~ ㅋㅋㅋ 그거 못해도 된다니까~

다현이: 아 나 잘하고 싶다고~

경준이: 정다현이 또 병 도졌네.. 즐기라니까!

다현이: 그거 안 돼요, 오빠. 알잖아요.. 외국 애들처럼 즐기질 못해 우리는.

선생이: 외국 애들은 즐기면서 해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경준이: 유럽은 종목 상관없이 운동선수들이 다 따로 직업이 있어. 그걸 하면서 운동을 해.

선생이: 아니.. 직업을 하면서 하는데도 그렇게 잘한다고요?

다현이: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외국 애들은 그걸 정말 즐겨요. 전지훈련 가봤는데 정말 즐겨요.

경준이: 아, 나도 그걸 어디서 느끼냐면 올림픽 할 때마다 느껴. 조금만 잘해도 영웅 대접해 주는데, 성적 조금만 안 나면 관심 없어져. 이게 문화적 차이더라고. 내가 스키강사 할 때 느꼈던 게,

스키도 뚝딱 고치는 경준

선생이: 어우 우리 경준이님. 스키 강사도 하셨어 ㅋㅋㅋ

경준이: ㅋㅋㅋ저 못하는 거 없다니까요~? 강습하면 오전, 오후 2시간씩 강습비가 꽤 비싸요. 한국 사람들은 돈 아까워 한 번이라도 더 탈라고 해.

선생이: 그렇죠.. 나라도 그 돈 내면 그렇겠다.

경준이: 근데 영국에서 4인 가족이 스키 강습을 받으러 온 거야. 애들이랑 엄마 아빠 넷이서 온 가족인데 아직도 기억나. 엄마가 한두 번 타고 컨디션 별로다 싶으니까, 쉬겠다고 하고 차 마셔. 나는 그게 진짜 문화충격이었어. 도와주겠다고 더 타라고 했는데, 괜찮대, 쉬겠대. 아예 문화가 다른 거야.

다현이: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른 거지.

선생이: 아 그럼 이게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네. 난 ‘어떻게 그렇게 잘 타요’를 궁금해했는데, 애초에 잘 탈 필요가 없는 거네요.

경준이: 즐기는 거지.

선생이: 와 진짜 충격적이야.

경준이: 어. 완전 달라.

‘어떻게 그렇게 잘 타요?'를 물을
필요가 없는 거네. 즐기는 거네.









선생이: ‘잘 타요?’를 묻기 전에, 잘 탈 필요가 없네.. 너무 충격적이다. 외국은 직업 운동인들도 운동을 즐기면서 한다는 거죠?

다현이: 네. 나 진짜 깜짝 놀랐어요. 선수 시절에 콜롬비아 전지훈련을 갔는데 운동 훈련 시간이 아침, 저녁 시간에 5시간씩 하고 그랬어요. 가끔 콜롬비아 선수들이랑 합동 훈련도 하는데, 걔네는 아침엔 또 안 와. 저녁 운동 시간 되면 애들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오는데.. 우리는 이미 거기서부터 충격이야. 우리는 걔네 오기 한 시간 전부터 몸이란 몸은 다 풀어제끼고 난린데, 시시껄렁하게 슬리퍼 신고 오고 있으면 진짜 충격이지.

선생이: 억 꼰대다 ㅋㅋㅋ

다현이: ㅋㅋㅋㅋ 맞아. 그땐 그랬나 봐요. 근데 경기하면 우리가 맨날 져. 훈련량은 우리가 훨씬 많은데. 걔네는 항상 웃고 있어. 근데 우리는 얼굴 죽을 상이야. 우리는 내일 비 오길 바라. 비 오면 스케이트 안 타거든요. “우리 너무 힘들어. 내일 비 와야 돼.”이러면, 걔네는 “비 오면 안 돼. 그럼 우리 스케이트 못 타.” 이러는 거야.

선생이: 와 완전 반대네. 걔네는 진짜 좋아서 타는구나.

다현이: 와 역시 ‘타고난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맨날 이렇게 죽을동 살동 해도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구나. 싶더라고. 콜롬비아 선수들이 우리나라 와서 훈련하면 “코리아 크레이지!” 하고 나가떨어져. 절대 훈련량 커버를 못 해.

경준이: 우리나라가 그래서 진다는 거야. 오히려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즐기질 못해서. 쟤네는 미친 사람들이야. 하고 나가떨어지는 이유가 있는 거지. 그니까 운동을 처음에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되게 중요해. 우리나라는 엘리트 선수들도 즐기는 법을 몰라.

다현이: 나도 선수 생활 그렇게 해보고 지도자를 하고 있어서, 얼마나 힘들지 알지만, 대회를 앞두고 있을수록 더 시키게 돼요. 애들이 너무 힘들어하면 “내일 학교 빼. 아프다고 하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니까. 아니면, “아파서 병원 간다고 해줄 테니까 담임 샘한테 얘기해.”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데 지도자로서..

선생이: 그치만 아무리 이렇게 얘기해도 경험하지 못하면 놓기 힘들 것 같아요. 이렇게 해야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다현이: 불안해요. 운동 안 하면. 지금도 그런 거 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쉴 줄을 몰라요. 인라인 선수들 지상 훈련 중에 ‘코너벨트’라는 게 있어요.

코노가 아니라 코너벨트 훈련

선생이: 코노(코인노래방)이요?ㅋ

다현이: 아니^^ 허리에 벨트 차고 하는, 허벅지 근육 터질 것 같은 훈련인데, 난 휴가 갈 때마다 그 벨트 들고 갔어요. ‘휴가’를 가는데도 불안감 때문에 거기서 그걸 하고 있다니까?    

내가 휴가 갔다 와서 훈련했을 때 내가 못할까 봐. 내 마음이 편치 않은 거야. 내가 쉬어도 되나? 은퇴하고도 한 달을 집에서 불안해했어. 어디 나가지도 못하겠어요. 너무 불안해서. 근데 많은 은퇴한 선수들이 그래. ‘이게 맞는 건가’ 내 엘리트 출신 친구도 그런 얘기하더라고..

경준이: 즐길 수가 없는 거야. 평생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 ‘못 하면 좀 어때’ 해본 적이 없는 거야.

다현이: 성적을 내야 되니까. 심지어 은퇴했는데도 그러고 있는 거야. 한 달로도 안 돼. 극복하는 거 되게 오래 걸렸어요. 완전히 못 떨치는 애들도 있어. 나도 완전히 떨친 건 아니지만.

경준이: 아 걔 말하는 거지 미정이? 거기는 얘보다 더해요. 60km를 운동한다고 사이클 타고 4시간 와서 브런치 먹고 다시 자전거 타고 갔다며..

다현이: 응ㅋㅋㅋ 운동선수가 은퇴하고 딱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 아예 운동 안 하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운동하거나. 나는 후자니까 몸을 괴롭히는 거야. 몸 망가질까 봐 불안해서 계속 운동. 중간이 없어. 그래도 요즘엔 좋아하는 거 하려고 노력하지.

선생이: 아, 그러면 축구를 시작하신 게, 그래도 이제는 은퇴했으니까 ‘좋아하는 거’ 즐기려고 하신 거군요?

다현이: 아니요.(단호박) 아니고, 축구가 체력관리에 짱인 것 같아서 시작한 거예요.ㅋ

선생이: 엥 축구도? 또 또 괴롭히려고 한 거예요?

다현이: 즐기자고 시작했는데도 안 되니까. 스트레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못해도 되는데...

선생이: 대체 운동을 왜 그렇게까지 해요?

경준이: 그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습관이 돼버려서 그런 거지.

선생이: 흠, 근데 현대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특징이 ‘불안이 높다’는 거래요. 그래서 자꾸 뭘 하는 거야.

다현이: 그래서 저도 불안장애 판정받은 적 있어요.

경준이: 불안이 높은 사람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을 만큼 치열한 사회인 거지.

경준이: 그게 운동이 됐든, 동아리든 학업이든 우리는 입시야. 수능 하나 보고 달려가는 거야. 이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은 이상. 교육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교육이 안 바뀌는 이유지.

다현이: 이게 바뀔 수 있을까요?

선생이: 천천히 바뀌지 않을까요?

경준이: 나는 변화라도 되면 성공했다고 생각.

다현이: 그래도 많이 바뀌긴 했어요. 예전보다는.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

 달리기는 거들떠도 안 보던 내가 다시 러닝화를 신게 된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19로 나의 모든 운동에 브레이크가 걸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두 다리와 운동화만 있으면, 어떠한 장비도 장소도 필요 없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나는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었지만, 남보다 오래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할 때마다 이전의 나보다는 항상 빨라졌다. 가끔은 뛰고 나면 시원하고 상쾌한 순간에 달콤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이때의 행복감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한다. 이 행복, 러너스 하이는, 1등을 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5등이든, 4등이든 간에 상관없이 ‘어제의 나보다 나아졌다’,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이것을 알고 난 후 올라온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근 10년간의 달릴 수 있는,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불필요했고, 잘함의 기준은 남이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 그저 뛰는 과정을 즐기며 전보다 나은 나를 향해서만 가면 되는 것이었다.      





‘달리기도 괜찮네?
이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나만의 사점과 세컨드 윈드

 운동을 하다 보면 더 이상 못하겠다 할 정도로 버거운 순간이 온다. 체육학에서는 이를 사점(dead point)라고 한다. 말 그대로 죽겠는 지점이다. 이 지점이 지나면 또 왠지 모르게 좀 괜찮은데 싶은 느낌이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이를 세컨드 윈드(second wind) 즉, 두 번째 바람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바람에서 우리의 운동 기능은 전과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며 비로소 다음 단계로의 성장이 이뤄진다.

 나는 여태껏 ‘남들이 정해둔’ 사점을 넘지 못해서 지레 포기해 버렸다. 나의 사점은 빨리 달리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보다 나은 나’가 나의 사점이었다. ‘나’의 사점을 넘어야지 ‘나’의 세컨드 윈드가 온다.


우물을 파도 내 우물을

 우리를 질리게 하고 포기하게 하는 것은 남보다 못함에서 오는 수치스러움과 좌절이다. 우리는 애꿎은 남의 우물을 파다 지친 것이다. 남의 우물을 파다가 물이 터지지 않으면 지쳐서 나가떨어지지만, 나의 우물을 파면 그렇지 않다. 설령 우물을 파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들, 그 구덩이는 벙커로 만들면 되는 일이다. 내가 그렇게 결정한다면 감히 그 누가 말을 보탤 수 있는가! 내가 벙커라면 이건 벙커고, 우물은 다른 곳에 파면 된다. 불필요한 수치스러움과 좌절에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



나의 불안은 경쟁에 휩싸인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바탕이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공교육에서부터 서열을 가리고 경쟁했던 기억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알지 못한 채'

억압받고 있을지 모른다. 진정 나 자신을 위한 경쟁인지, 남을 위한 경쟁인지를 생각해 보자.


나를 위한 경쟁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지치지 않게 나를 잘 토닥여주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코리아 크레이지! 상태로 가기 전에 내가 나 자신을 구해주자.

우리는 그럴 만큼 충분히 능력이 있고 잘해왔다.      


즐기기만 하면 성적이 안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진 않았나요?

운동을 시작하기 전, 난 잘 못하는데 해도 되나 걱정한 적은 없나요?

가만히 쉬는 사람은 곧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나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을 느낀 적은 없나요?

당신이 학교에서 겪은 경쟁과 불안은 무엇인가요? 그게 현재의 당신에게 주는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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