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망가자

도망가자 13

카이로스 (Kairos)

by 목문수



물은 차가웠다. 밤 파도는 예상보다 더 거칠었다. 물높이가 정강이를 넘어서자 똑바로 서 있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파도를 헤치며 걷는 사이 운동화의 틈새로 물과 모래가 들어와 박히면서 오른쪽 신발이 자꾸만 벗겨지려고 했다. 소년은 가까스로 발을 신발에 끼워 넣고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헤치고 나갔다. 입고 있던 셔츠가 물 위로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고 젖은 청바지는 이리저리 다리에 감겼다. 조금만 더 앞으로.


숨을 안 쉬면 된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버티면 끊어질 거라고 계획했다. 물높이가 가슴 정도까지 오는 곳에서 소년은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꾸륵... 꾸륵.. 꾸르륵... 처음 들어보는 소리. 귀로 물이 차는 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물속은 자신이 휘저은 모래로 뿌옇게 보였다. 더 이상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그는 참던 숨을 내쉬었고, 내쉰 숨의 반작용으로 벌컥 물을 마셨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 코로 들어온 물이 폐를 압박하는 통증 속에는 진지함이었다. 농담하지 않는, 연민하지 않는, 육중한 밀도의 바다가 소년의 목과 코의 구멍을 향해 넘어왔다. 소년 몸의 크기나 소년의 나이와 과거, 기억과 눈물따위는 바다에게 중요치 않았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그러하듯 소년에게도 공평했다. 그 때 소년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살아있기 때문에 느껴야만 하는 절박함. 죽음에는 정면밖에 없었다. 우물쭈물 거래할 수 상대가 아니었다. 돌아설 수 없는 진지한 응시로 죽음은 단 하나를 원했다.


팔에 힘이 들어가고 첨벙거림이 강해졌다. 허우적거릴수록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물의 양이 늘어났다. 참을 수 있는 숨이라는 건 없었다. 그런 식의 얕은 거래에 대해 바다는 들은 적도 없었다. 코와 입으로 벌컥거리며 들이킨 짠물의 양이 많아지면서 그는 물속에서는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소리라는 게 원래 성대를 울리는 공기가 나가면서 생기는 파열음이다. 물이 들어오기만 할 때 성대는 울릴 수 없다.


물 위를 바라보며 버둥거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수면의 약한 빛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소년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자신을 느끼며,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한 번도 잘해주지 못한 단 한 사람. 부모도 소녀도 아닌, 이렇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단 한 사람. 가엽고 어리석은 사람.





* * * *





1시간쯤 지났을까. 횟수를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여자는 자신의 절을 세지 않았지만 이미 200회를 넘어가고 있었다. 깔았던 방석의 무릎 닿는 자리가 움푹 패었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았다. 손을 풀어 양손으로 땅을 짚은 후 이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이마가 닫고 완전히 엎드린 순간, 가슴 깊은 안쪽에서 토해지듯 날숨이 흘러나왔다. 땅에 온몸을 붙인 채 이마 저 바닥에 내려놓아 앞을 볼수도 없는 이 순간에야 비로소 가장 깊은 곳에 고여있던 공기가 밖으로 나왔다. 이것이 산자의 숨결이었다. 살아있음으로 인해 토해낼 수 있는 신음소리였다. 그렇게 조금 엎드려 있던 그녀는 짚고 있던 양손을 천천히 뒤집어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했다. 접종례. 완전한 항복이자 완전한 포기의 순간. 빈 손바닥이 향한 곳은 자신이 아니었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무릎을 펴고 허리를 세워 바로 선 후 가슴에 양손을 합장했다.


거실의 창밖에 하얗게 날이 새고 있었다. 동쪽 창가에는 어제 저녁과 다른 태양을 기다리는 연한 분홍빛의 새벽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그 때 지난밤, 여자를 신산하게 했던 휴대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 아휴,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여기 왕산해수욕장 119지구대입니다. 강상훈 학생 담당하시는 윤정아 선생님 되시죠? "











- 계속






L'impossibile vivere - Renato Zero

불가능을 살아

https://www.youtube.com/watch?v=HOhsVSmqKuQ

https://www.youtube.com/watch?v=ONUVLIgtZHU


Try again. Fail again. Better again. Or better worse.

Fail worse again. Still worse again.

Till sick for good. Throw up for good. Go for good.

Where neither for good. Good and all...

- Samuel beckett, <WORSTWARD HO, 최악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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