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문수 Nov 27. 2020

벼락거지가 되었다

2020년 무주택자의 마음

모르고 있었다. 벼락이 쳤는지 안쳤는지도 몰랐다. 허니 거지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도 모르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최북단. 북한발 뉴스가 쌩하면 오들오들 떠는 지역이다.

남들보다 한 달 먼저 겨울이 시작된다고 해서, 시베리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렇게 멀리까지 이주해 온 이유는 단 하나. 전세가 싸서다. 서울까지 가려면 넉넉히 두 시간을 잡고 현관문을 나서야 하지만, 매일매일 출퇴근자가 아니니 감수하기로 했다. 이점을 빼면 춥고 고요했던 동네다.


이곳이 2기 신도시라는 것도 사실은 며칠 전에야 알았다. 이사 올 때, 여기까지 올라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유로를 달렸더니 엉성한 아파트 숲이 나왔고. 의외로 많은 집이 있길래 들어와서 산 것뿐이다.


몇 년 전 이주 당시에는 도시가 좀 컴컴하게 느껴질 만큼 빈 공간이 많았고, 아파트 앞으로 빈 공터에 배추나 토마토 농사짓는 분들도 계셨다. 몇 년 떠났다가 올해 초 다시 돌아왔을 때도... 공사 소음이 조금 커지기만 했을 뿐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허니, 경기도에 단 두 곳 배제되어있던 "비규제지역"이라는 것도 몰랐다. 김포의 집값이 들썩인다는 뉴스도 흘려들었다. 김포는 여기서 멀다. 단 하나 있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통행료도 낸다. 헌데... 김포가 규제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가 유일한 "비규제지역"으로 남았다.


지역 온라인 카페에서 웅성거리는 몇 개의 글을 읽고 알았다. '호가'라는 것이 2억이 올랐단다. 2억? 내년이면 10년 되는 아파트가? '여기서 계속 살아볼까...'라며 통장잔고를 계산해보던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인데. 부동산 아주머니 말대로 못 했다. 망설였다. 내가 틀렸다. 모두들 아파트를 산다. 영혼이라도 끌어모아서 사고 있었다.


왜? 선뜻 집을 사지 못했나. 돈이 없어서다. 그게 젤 크다.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내 '집'에 대한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주택에서 30년 정도를 살았다. 한집에서.

아버지가 망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을 모두 그 집에서 보냈다. 마당이 있고, 개가 있고, 감나무가 있고 김장독이 있고 옥상이 있는 집이었다. 그것이 영혼에 각인된 '집'의 모양이었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집. 고향이 없는 나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다.


아파트를 사면,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속에 뭔가를 저당 잡힐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에, 영혼도 갈아 넣어 보지 못했다. 아파트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20여 년 전  "부자 되세요~ "라고 외치던 김정은 언니의 상큼한 조언의 진짜 의미는... "아파트 사세요~"였나 보다. 머뭇거리며  흔쾌히 응답하지 못한 죄.





앞으로는 내가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부르는 공동주택, 변두리 아파트에서 사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당이 있는 집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내 영혼은 더욱더 자유롭다. TT


오늘도 신문을 펼치면 기자님들은 종부세 걱정과 검사님들 걱정을 하시는데... 갑자기 벼락거지가 된 내 걱정도 좀 해주시면 좋겠다. 아마 영원히 안 해주실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르는 이의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