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를 하는 곳은 어디나 힘들겠지만 경험 없는 기간제 교사에게 중학교만큼 거친 곳도 없다. 상투적인 예의조차 잘 지키지 않는 곳에 매일 머리를 밀어 넣어야 끝나는 노동. 종례를 위해 3학년 1반 교실 문을 열 때... 여자는 삐그덕거리는 경첩처럼 매번 마음의 가장자리가 긁혔다.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린 채 휴대폰 게임을 하는 아이. 소리 지르듯이 요란하게 웃으며 수다를 떠는 아이.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 아이. 엎드려 자는 아이. 싸우는 건지 노는 건지 분간이 안되게 몸을 부대끼며 밀치는 아이들. 복도에서 쓰레기 통을 발로 굴려가며 축구를 하는 아이들까지. 스물여섯 개의 이마가 여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방향을 바꾸려면, 10분... 아니 그 이상이 필요했다.
교탁 앞에 정 자세로 서서 조용히 버텼다. 능력 있는 남편과 유난스러운 친정 부모의 옆구리 뒤에 숨어있느라 용케 피했던 세상. 그 불친절이 여과지 없이 내린 원두커피를 마시듯 목 뒤로 꿀꺽꿀꺽 넘어왔다.
창문틀 끝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던 상훈이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봤다. 이 눈빛의 뻔한 직선도 더 피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몇 달 후에 소리 없이 사라질 기간제 교사라도 이 순간. 여자는 눈꺼풀에 힘을 주고 꾸지람을 담아 소년을 노려봤다. 씩-웃던 상훈이 시야에서 풀썩, 사라졌다.
아이들의 요란한 비명. 이어진 또 다른 탄식의 아우성. 여자의 호흡 발작이 시작된 것도 그 순간이었다. 소년은 4층 창문 아래쪽으로만 길게 둘러진 빗물받이용 난간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아무렇지 않게 창문으로 다시 고개를 내밀고 깁스한 왼쪽 팔을 쓰지 못해 낑낑거리며 교실 안쪽으로 넘어왔다.
반면 여자의 폐에서 시작된 이산화탄소 과배출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윤정아 선생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은 교탁을 잡은 채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옆반 선생이 뛰어나와 복도 창문으로 머리를 디밀고 놀란 눈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 * * *
"... 우리 학교가 아무래도 형편상 평준화고등학교 진학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서두... 그래도 각반에 몇 명씩은 담임이 꼭 챙겨줘야 하는 아이들 있지 않습니까? 국제고나 영재고, 예고 준비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결국 우리 학교의 희망이에요. 자소서 한 번 씩 더 봐주시고요. 면접 날짜 학부모님들께 한 번씩 문자로 체크해주시는 거... 3학년 담임들께 특별히 당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뭐 일이 있었다던데? 2학년 4반 여학생이... 쓰레기통을 창문 밖으로 던졌다고요? 다친 사람은 없고... 아니 쌍꺼풀, 자연산이다 아니다가 그렇게 포악하게 다툴 일입니까? 아이고... 일단 그 학생은 월요일 점심시간에 제 방으로 좀 내려오라고 하시고요. 주말에 다들 잘 쉬시고 월요일에 봅시다. 아, 그리고 3학년 1반 윤정아 선생님은 뭐 아팠다면서? 지금은 괜찮고? 회의 끝나고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죠."
회의가 끝나자 수학 선생이 귀 끝까지 빨개진 채, 여자 쪽으로 눈을 찡긋거렸지만. 교실에서, 옆반 선생까지 보는 앞에서 갑자기 시작된 공황 발작을 달리 변명할 꺼리가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이제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감의 면담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년 2월에 임시 개교할 검단 쪽 신설 중학교 교장과 만날 일이 있는데, 면접이라고 생각하고 저녁식사에 한번 동석해달라는 거였다. 퇴직을 코앞에 둔 60대 중반 교감의 동공이 전에 없이 번들번들하게 빛났다.
* * * *
몇 달 동안 들어가지 않던 남편의 방문을 열었다.
... 그날, 그 얘기를 다시 꺼낸 날, 남편은 와이셔츠의 목 단추 몇 개를 신경질적으로 풀었다.
"... 제주도 처형 집에 다녀와. 바람 쐬고 오라고. 좀. 제발! 대체 왜. 왜... "
목소리가 떨렸다. 등을 돌린 어깨가 흔들렸다. 울고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 휴대폰을 던졌다. "... 씨발." 낮게 뇌까린 후 화장실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문턱에 기대 서서 지금 자신의 뺨에 흐르는 눈물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가, 그날도 여자는 오늘 같은 생각을 했다.
비스듬히 기대 선 클래식 기타, 매트가 반쯤 접힌 퍼팅 연습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밤마다 한 시간씩 매달려있던 로잉머신... 방에는 남자의 평범하고 성실한 욕심이 지난 봄과 다름없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옷장 문짝에 걸린 감색 양복 소매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무 아기나 보면 윙크를 하고 코를 찡긋이며 장난을 하던 남자. 별로 친하지도 않던 여자가 설명 없이 불러 낸 밤에도. 마음껏 기대 울라며 어깨를 내주고 등을 도닥여주던 신사였다. 어떻게 해도 썅년이었다. 유죄를 피할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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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면 충분했다. 이삿짐센터에서 온 전문가들은 집안을 채우던 무거운 가구와 대형 가전을 모두 치웠다. 동생 부부가 아예 해외 이주를 결심했다고 짐작해버린 남편의 누나에게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쓸만한 것은 자기가 알아서 잘 챙길 테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의 가족에게는 언제나 감사할 일뿐이었다.
둘이 살기엔 넘치게 큰 집. 이사 왔을 땐 이미 남편의 어머니가 당장 마트도 갈 필요 없이 완성해놓은 삶이었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반찬통에 김치까지 잘 썰어 넣어둔 정성에 여자는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경계 없는 사랑이, 그 냄새조차 싫은 순간이 있다.
슬리퍼 소리가 쓱쓱 울리는 거실의 한가운데 서서 여자는 오래전에 혼자 동네 뒷산에 올랐을 때의 평화를 느꼈다. 여기 오는데 2시간이면 충분했던 거다. 아주 높은 산도 아주 멀리에 있는 산도 아니었다.
* * * *
성실한 이들이 내일을 기약하며 서둘러 잠자리로 돌아간 일요일 밤.
고요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옅은 비가 도로에 얼룩을 그리기 시작했다. 불빛이 초록으로 바뀌었지만 길을 건너지 않는 소년이 우산도 없이 앉아 있었다. 여자의 소나타는 정지선에 서서, 와이퍼로 지워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출발했던 차는 두 블록 더 직진했다가 유턴 신호를 받고 돌아 소년이 비를 맞고 있는 곳에서 멈췄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