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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쓰 Jan 26. 2022

공감 대화

마지막 숙제를 끝냈지만 아이와 또다시 오늘 해야 할 과제를 확인하며 서로의 눈을 매섭게 쳐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말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화가 났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두 눈과 어깨는 며칠 고된 노동을 한 것처럼 뻐근했으나 쉽게 아이의 숙제 확인하는 것을 그만둘 것 같지는 않았다. 숙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날 해야 할 과제에 대해 무작정 미룰 것 같은 아이의 습관이 막연하게 불안했고, 홀로 굳센 엄마는 아이의 습관 노트를 보며 화를 끌어올린 것이다. 낮부터 밤까지 이어진 실상 똑같이 반복되는 소리에 엄마는 무서움마저 느껴졌다. 지금 이 시간에 가장 두려운 것은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은 것도, 대충 해놓은 것 때문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엄마의 이야기를 스쳐가는 바람처럼 여기는가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좋고, 즐거워야 열심히 한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 엄마가 당면한 공감적 소통 흔들림 앞에 확고함 대신 여유를 내보이는 아이의 마음이 어찌 화나지 않겠는가.

차라리 아이의 헛된 공언이 아이와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막막함보다 더 나을 것 같았다. 그건 적어도 무엇인가 하겠다는 의지의 증거가 되니까.

아이와의 소통을 꿈꾸는 엄마의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본다. 이건 시급한 문제이다. 어쩌자고 엄마는 아이와 소통으로 이런 어려운 문제에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는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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