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끝내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요령은?

by 복쓰

인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묘하다. 불편함마저 감도는 이 단어에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아이가 보는 만화 중에 도깨비가 나온다. 그때 도깨비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인간들이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말하는 인간은 꽤 비호감으로 느껴진다. 하물며 인간이 말하는 인간은 도대체 어떠해야 하는가? 불편함이 감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을 사람이라는 격을 높인? 듯한 단어로 부르고 싶은 욕구마저 느껴진다. 그럼에도 인간으로 통일해서 머물러보려고 한다.

인간을 많이 만났다. 처음 만난 인간부터 지금까지 간간히 짧은 주기로 만나게 되는 인간까지..

인간과의 만남에도 시간 분량이 모두 다르다. 그러한 인간들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배움의 내용도 깊이도 모두 달라 사실은 크게 기억에 남은 것도 없다. 그 가르침에 그렇다 할 마음을 두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 아주 오랜 뒤에 그 요령을 알게 되었다.


"세 걸음만 가도 스승이 있다."는 말을 내가 만나는 어린아이(어린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나 조차도 섬뜩하다. 이때만큼은 어린아이라고 할 것이다. 내 마음이니까.)에게 전한다. 잘하는 인간의 모습이든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든 그 일에서 분명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세 걸음을 참 많이도 걸었다. 나는 다른 인간들에게 어떤 점을 가르쳐주었을까? 좋은 모습의 나, 부족한 모습의 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차! 다른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모습이다.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 또한 인간들의 선택에 대한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인간에게 어떤 요령을 배웠을까? 또는 배우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일은 무엇이었나?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실수는 당연하다."는 식상한 말을 진솔하게 대해 보지 못한 요령이 지금의 내가 인간에게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지금은 하루에도 여러 번 나에게 내가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은 삶을 살아낼 때, 발휘할 수 있는 엄청난 요령이라고 말이다. 식상한 언어가 현재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요령을 몰랐다. 한참을 아프고 나서, 인간 나는 지금의 나에게 끝도 없이 가르쳐준다. 안아주며 말한다.

"괜찮아. 실수해도. 넌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 멋지지 않아도 돼. 너는 너라서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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