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롭다'라는 단어에서 마주한 몸의 반응은 조금씩 흔들리는 어깨와 두 눈에 들어찬 눈물이다. 애처로운 시간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
세상이 알려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잘 따랐을 뿐인데, 오히려 낯설지 않은 질문 앞에서 주춤거린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어제까지의 세상은 묻지 않았다. 일관된 침묵으로 "부지런함"의 미덕을 한껏 발휘하는 것이 진리라고 들었다. 잠자코 있으라고 했다. 그냥 완벽하게 외우고 있으라고 세상은 말해주었다. 그러면 탁월한 보상이 따를 것이니까, 좋은 거니까 세상이 그렇게 믿음을 주었다. 개인의 입장에서 듣기의 역량은 탁월해졌다.
하지만 낯설지 않은 질문은 자신에게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낯설지 않은 질문은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것을 꺼내라고 부드럽게 요청했다. 1살의 신체적 탄생을 겪은 개인이지만, 질문으로 새롭게 태어난 개인의 정신은 쭈뼛거렸다. 그리고 서성댔다. 이제 겨우, 탄생의 순간을 맞이한 정신은 사소한 질문에도 말문이 막고, 앞이 캄캄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현상을 마주한다. 하지만 마주한 장면에서의 알아차림이 소중한 자신의 일부임을 인식한다.
새롭게 태어난 정신이 세상의 공격적인 평가와 채점에 자유롭기 위해 제법 신경을 쓴다.
어제까지의 자신은 세상이 전하는 것과 그것의 두려움에 끌려다니며 애처로운 끄덕임을 실행했다. 얼굴의 끄덕임이 본인의 의지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런 자신이 애처로워서 웃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정신적 탄생의 순간을 맞이한 자신은 작은 것부터 인식하려는 의지로 굳은 표정을 짓는다. 마음속에 웃음이 피어난다. 자신이 황홀해서 웃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