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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괜찮아진 적이

죄와 벌

by 복쓰

208쪽

이 순간 그는 가위를 들고 제 손으로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싹둑 잘라 낸 기분이었다.


나의 질문과 대답

나 자신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괜찮아진 적이 있나요?


나는 왜 이렇지?

내가 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렇게 하면 나를 인정해주겠지?

우리 부모님은 왜 나를 더 감싸주지 않으셨을까?

아이들은 자꾸 싸울까?

처음 간 곳에서는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까?

어떤 말을 해야 분위기가 괜찮아질까?

어떤 방법으로 해야 될까?


나는 늘 수단으로 나를 대했다. 조금 더 쓰임새 있어야 했고, 효과가 있는 방법이 나에게 있어야 마음이 든든했다. 부족함이 느껴지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 숨기기 바빴고, 더 화려하고 멋진 방법으로 나를 포장하기에 애를 썼다.


그렇게 수단을 기준으로 나를 내몰다가 드디어 한계가 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더 이상 멋진 방법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숨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무기력과 무방비로 나는 흔들렸다. 아무것도 없을 때의 공허가 나를 눌렀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더욱 파닥거리며 나 자신을 못살게 굴었다. 내가 나를 말이다.


내가 무엇을 목적으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애도했다.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있는 그대로 충분히 멋지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편안하고 안전된 경험 안에서 말이다.


나는 지금 살아있다. 그 무엇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살아있음을 기준으로 나는 괜찮다.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있으니까.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니까.

생각보다 괜찮다. 편안함이 느껴진다.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내 시간과 에너지의 기준이 오롯이 나에게로 왔다. 드디어 찾아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힘이 실리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작은 것에 감동하고, 웃음이 난다. 내일이 기대가 되고, 아이들의 작은 몸짓과 말짓에 귀 기울인다. 예전보다 선명하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존중한다. 무엇보다 내가.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고, 깊어지고, 고요해진다.

지금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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