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쓸 수 없어. 그리고 상황이 시적이라서 내가 언니한테 설명해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야. 나는 시적이지 못해. 언니가 나에게서 어떤 것을 읽고 그 안에서 시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언니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니야. 내 의도도 아니고. 시적 묘사란 정신이 모자라는 작가들의 피신처야.
나의 질문
어떤 것을 읽고 그 안에서 시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누구의 몫일까?
아이들은 자신에게 신기한 느낌이 들었는지 두 눈을 한시도 떼지 않고 쳐다보았다. 미덕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는지, 친구와 하고 있던 말도 멈추고 선생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했고, 자신에게 어떤 미덕이 있는지 찾아내고 싶어 했다.
"보이는 부분이 1퍼센트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99퍼센트야. 다른 누군가 너를 비난하거나 나쁘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너를 결정할 수는 없어. 우리에게는 아직 잠자고 있는 미덕이 있거든. 보이는 부분은 작은 나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큰 나야. 큰 나는 다른 사람은 잘 보지 못해. 그리고 미덕을 깨워 낼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너에게 빛나는 미덕과 노력해야 할 미덕을 찾아볼래?"
색종이 한 장을 꺼내어, 한쪽 모서리만 살짝 접어 내려 보석을 하나 만든다. 보석 색종이 위쪽 부분에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아래쪽 남은 부분은 똑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미덕을 적는다. 자신의 미덕을 발견해 낼 준비를 한다. 노력해야 할 미덕을 적을 때는 빛나는 미덕을 찾아낼 생각도 못하고, 부족한 부분만 잔뜩 떠오른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비난의 말, 추궁의 말, 평가의 말이 자신의 생각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시하고, 평가했던 말은 자신을 두려움에 빠지게 했고, 슬프게 만든 것이다. 때로는 화도 나게 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글로 다시 읽어 본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무엇을 찾아낼까? 어떤 것을 찾아냈다면 그것은 누구의 몫일까?
미덕을 알려준 선생님의 몫일까? 미덕의 가능성을 찾아낸 아이들의 몫일까?
색종이 보석에서 노력해야 할 미덕을 쓰고 난 뒤, 남은 자리에 겨우 쓴 자신의 빛나는 미덕을 아이들이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서 보람을 느끼며, 자신을 가능성의 존재로 바라본다. 자신을 더 이상 못난이가 아니라, 아직 해보지 않는 가능성의 존재로 바라본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자신이나 남을 탓하지 않고, 선물 같은 질문을 떠올릴까?
자신을 돌아보는데 선물 같은 질문을 떠올리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어떤 것을 읽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데 누구의 몫을 따지는 것보다, 찾아낸 그 무언가가 그 누구에게라도 습관으로 자리 잡기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