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으로
신규 교사일 때부터 수업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직접 참관할 수 있을 때도, 영상으로 접하는 수업에서도 선생님들의 수업 진행에 감탄했습니다. 처음 교실 수업을 보았을 때, 교육대학교를 다니면서 느끼지 못한 수업에서 선생님의 능숙함에 감탄하며 나는 어떻게 수업을 해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수업지도안도 챙기고, 선생님들의 사후 협의도 들으며 수업을 이해하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교육학적 지식을 공부했고, 수업을 참관하면서 배웠던 내용이 나올 때는 희열이 있었습니다.
수업에서 있어야 할 것,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준을 세우며, 스스로의 수업평가 잣대를 만들어 수업 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분명 희열이 있던 시간이었지만, 원래 내 교실 수업으로 돌아오면, 내가 감탄했던 수업의 내용, 방법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수업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전하며 소중하게 빛났던 보석 문장들도 우리 교실에 들어오면 그 힘을 잃었습니다. 수첩에 적어왔던 내용들은 마치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 누군가처럼 며칠 지나면 모두 사라지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조금 남아있는 기억으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적용해보려 하면, 당장 아이들의 다툼, 교과지도 및 준비로 희미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수업을 보았던 시간과 실제 내 수업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강아지똥 그림책에서 강아지똥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전해지는 막연한 고마움과 삶의 의미에 대해 마음 깊이까지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림책은 어떤 수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그림책으로 전하기 어려운 마음을 아이들과 나눠보는 것이었습니다. 모호하고, 답답했던 수업의 방법을 그림책을 통해 그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지식을 전해주는 것에 앞서 함께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매일 하는 그 수업이 빛이 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수업이 완성되고, 여물어가는 느낌을 통해 쫓아다니던 선생님에서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에 대한 다양한 경험은 배움 지식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것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나는 어떤 수업을 꿈꾸는가? 나는 수업에서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무엇을 위해 매일 글을 쓰며, 책을 보는 것일까?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한 번쯤은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경험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단단해지고, 함께 하는 너와 편안해지는 시간이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사람 앞에서 주섬주섬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쩌면 어린 시절 저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외로움이 찾아온 시간. 바쁜 부모님은 사랑을 전해주기도 바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의 아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시간을 더해주어 사랑을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사랑을 느끼며, 그 따뜻함에 내면이 바로 서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머무는 동안의 사랑이 힘이 되고, 비로소 우리가 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수업을 대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싶은 마음을 소중히 여기게 도와주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책에서 머문 장면을 곰곰이 따져보고, 함께 대화 나누며 그것들을 서로의 성장 경험으로 펼치는 것이 그림책과 생각 대화 시간에서 제가 해보고 싶은 수업의 모습입니다.
"생각열기, 생각 모으기, 생각 연결하기, 생각 펼치기"
생각의 과정에서는 나의 경험은 배움의 소재로, 그림책과 함께 하는 순간 "살아있는 나의 일부"로 떠오릅니다. 받아들여야 하는 내가 아니라, 예전의 나,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를 매 순간 떠올리며, 경험을 기록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나는 철저하게 수업에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