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한 골키퍼에게 위로를 전하고 받은 깨달음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직으로 시작한 회사 생활에서, 나는 남들보다 긴 부사수 기간을 거쳐 프로젝트 리더로 성장했다. 해외에 있는 고객사의 수많은 요구사항과 복잡한 조건들을 맞춰야 하는 까다로운 장기 프로젝트들을 전담하며 고객에게 선택받는 제품들을 개발해왔다. 이러한 성공들 덕분에 개발 파트너로서의 입지가 단단해졌고, 그동안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다른 분야의 프로젝트들에도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동안의 성과는 인정받아 일 년에 단 한 명의 연구직에게 주어지는 회사 내부 상도 받았다. 업계 최대 학회에서 발표를 한 연구소의 첫 번째 사람이 된 것은 내게 큰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고민과 불만이 쌓여갔다. 같은 분야의 프로젝트만 연이어 맡으면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특허를 보며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내가 세계에서 가장 잘한다고 자부했지만, 내 프로젝트보다 다른 프로젝트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밀려왔다. 비슷한 시기에 제품이 유상화되어 프로젝트가 완료되더라도, 매출이 적은 다른 프로젝트는 커피차를 불러 축하를 받는 마당에 매출액이 큰 내 프로젝트는 완료를 알리는 메일 한 통이 전부인 것을 보는 허탈함마저 들었다. 그 커피차 앞에서 부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웃어야 할 때는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다른 프로젝트들은 내가 쓸 수 없는 비싼 원료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몇 년째 인력 충원을 요구해왔지만 묵묵부답인 내 프로젝트가 아닌 잘 풀리지 않는 프로젝트에 신입 인원이 배정되는 것도 답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맡아 무난하게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 나는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논문도 쓰고 특허도 작성해도 승진이나 고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오히려 중요한 기회들은 나 대신 다른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내 성공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다 못해 다른 프로젝트의 자원으로서 소비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애써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불쑥 화가 치밀곤 했다. 성취감에 만족하던 날도 있었지만, 내 성과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에 분노하며 동력을 잃어가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렇게 해서는 무엇하겠나, 결국 남 좋은 일만 할 텐데, 월급이나 받으며 적당히 지내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마음속을 잠식했다.
축구 경기의 그라운드 위에서 골키퍼는 팬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느껴지는 선수다. 경기 시간의 절반 동안 그는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등 뒤에 두지만, 나머지 절반은 원정팬들의 야유 속에서 실수를 바라는 시선을 견뎌야 한다. 필드에 서 있는 선수이지만, 공을 따라 뛰어다니는 동료 선수들을 지켜보며 골이 터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은 팬들의 마음과 가장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경기 중 몇 번이 찾아올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는 반드시 그는 수비에 성공해야만 하고,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경기장을 좌절에 빠뜨린다. 상대의 공격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들어올지 예측할 수 없고, 심지어 막아낸 공이 바로 다시 날아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안도할 수 없다. 골키퍼는 승리를 이루어낸 영웅으로서 칭송받기보다 패배의 주역으로서 책임을 지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골키퍼는 경기장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기도 하다. 사정없이 몸을 내던져서 막아내면서도 득점의 순간에 팀원들과 함께 세레머니를 할 수 없다.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두 명 이상 필드에서 뛰지 않기에 같이 논의를 할 사람도 없다. 다른 선수의 반칙으로 인해서 상대 선수와 일대일로 맞서는 페널티킥의 경우, 99% 정도의 확률로 본인이 한 일은 아니지만 일단 혼자서 골문을 지켜야 한다. 골키퍼는 정말로 큰 부상을 입지 않는 이상 다른 선수로 교체하지도 않기 때문에 정말 오롯하게 90분 이상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만 한다.
필드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특장점을 바탕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지만, 골키퍼는 그렇지 않다. 필드골과 페널티킥 모두에서 타이밍과 방향을 완벽히 읽어내야 하고, 골킥 역시 정확하고 강하게 차야 한다. 수비와 빌드업을 조율하는 것은 물론, 달려드는 공격수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여러 능력을 겸비해야만 '좋은 골키퍼'라 불린다.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뿐 주목받지 못한다. 골키퍼는 '조커'가 될 수 없지만, 늘 팀의 '에이스'여야만 한다.
주전으로 나설 수 있는 골키퍼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세컨드 골키퍼나 그 이하의 선수들은 언제 기회가 올지 보장조차 되지 않는다. 세컨드 골키퍼는 거의 모든 경기에 후보 선수로 벤치에 앉아야 하지만, 경기 대부분을 출전하지 못한 채 몸만 풀며 대기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주전 골키퍼가 경기 중 부상을 입으면 예고 없이 출전하게 되는데, 그 순간 경기의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때로는 경기를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단번에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오지 않는다면 그는 계속 벤치에서 워밍업만 하고 팀을 응원하며 파이팅만 외치는 선수로 남을 수도 있다. 팀 내 주전 골키퍼 자리는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는 주전 골키퍼인 양형모 선수에게 자연스레 눈길이 많이 갔다. 경기 전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골키퍼의 워밍업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가장 많이 뛰어오르고 바닥으로 몸을 던지며 골문을 지켰다. 그래서 늘 가장 유니폼이 성치 않은 선수는 양형모 선수였다. 테이핑으로 감싼 손가락을 두꺼운 골키퍼 장갑 속에 밀어 넣으며 몇 번이고 일어나 다시 막을 준비를 하는 모습은 매번 경이로웠다. 그가 종종 되뇌이던 ‘최선은 누구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말은 참 멋있었다.
올해 첫 지지대 더비에서 승리한 뒤, 그가 그라운드 위에 반듯하게 누워버린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와 반대 방향의 원정석에서 지켜보던 나는 잠시 그가 숨을 쉬고 있는지 걱정되기까지 했다. 또 경기가 아쉬운 패배로 끝났을 때,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회사에서의 나와 골키퍼인 그를 비교해보면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성공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 성공은 또다른 사람들의 성과를 위한 기반으로 쓰인다. 모든 일을 잘 해내기를 요구받으면서도, 내 노고가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골키퍼의 자리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를 떠올리면 나 자신의 부족함이 부끄럽게 느껴지곤 한다.
나는 비록 내가 원하는 시점이나 방식은 아닐지라도 내가 만든 결과에 대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양형모 선수의 성공은 그날로 끝난다. 나는 내 성과에 대해 기뻐할 수 있지만, 그가 단 하나의 실점 없이 클린시트를 기록하더라도 팀이 승리하지 못하면 마음껏 기뻐할 수 없다. 팀이 승리하더라도 실점이 있었던 경기는 그에게 온전히 만족을 주지 않는다. 내 개발 과정에서의 실수와 실패는 배우는 과정으로 인정받고 다음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골키퍼의 실수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다음 기회는 약속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형모 선수는 매 순간 온몸을 내던지며 자신의 역할을 다해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매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제의 노력이 오늘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내일의 나를 성장시키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묵묵한 헌신은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양형모 선수는 회사에서 때로는 바보처럼 여겨졌던 '묵묵함'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연패가 이어지던 2024년 5월, 충남아산과의 경기가 있었다. 경기 종료를 3분 남겨두고 터진 상대 팀의 골로 결국 그날도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 종료 후, 주장으로서 선수단을 이끌고 원정석에 모인 수원 팬들 앞에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양형모 선수의 모습이 유독 마음에 아프게 남았다. 묵묵히 제 몫을 다 하는 것의 중요성과 가치를 내게 보여주고 있었던 그였기에, 중계를 통해 본 그의 표정마저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양형모 선수가 승리 후 팬들에게 인사를 올 때 씨익 웃으며 보여주던 그 미소가 떠올랐다. ‘You’re the best’라는 문구와 그가 가장 외로워 보일 때 입는 원정 유니폼의 노란색. 문득 작년에 사두고 쓸 기회를 놓쳤던 카드가 바로 그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일부러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조용한 사무실에서 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편지지가 아닌 카드라 공간이 많지 않았기에, 내용의 길이를 조절하며 핸드폰 메모장에 써둔 글을 하나하나 옮겨 적기 시작했다. 나흘 후에 있을 다음 경기 전에 그가 이 카드를 받아보길 바라는 마음에 퇴근 후 곧바로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급한 마음에 선택한 익일특급 덕분에 다음 날에 바로 배송 완료 알림을 받아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정 경기를 보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비슷한 시간대의 기차로 이동하려던 선수단과 마주칠 기회가 생겼다. 부산역에 있던 다른 팬들과는 달리 나는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양형모 선수에게 다가갔다. 사실 좋아하는 선수 앞에선 얼어버리기 일쑤인 나를 대신해 직관메이트가 나서서 사진을 찍어주며, 양형모 선수에게 카드를 보낸 사람이 나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매우 반가워하며 락커룸에 그 카드를 두고 운동 전에 꺼내 읽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괜히 이런 카드를 보내는 것이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나에게 큰 안도와 기쁨을 주었다. 내가 전한 마음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히려 나야말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남겨본다.
'모캡'의 모습이 빅버드 바깥에서도 제게 참 많이 힘을 주어요.
수원의 열두번째로서,
엠블럼에 한참 입 맞추는 당신의 뒤와
필드 반대편 당신의 앞을 지킬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는 트리콜로 동료들과 함게 청백적의 기를 들고 끝까지 지키고 있을게요.
'카니발을 부탁해'를 정식으로 모캡에게 들려줄 수 있기를,
꾹꾹 눌러담은 마음이 담긴 이 카드가
그 때 까지 한 번 더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