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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치 Jan 27. 2022

퇴사 후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 앞으로의 계획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면 어떤 내용을 넣을 건가요?


저는 이렇게 소개해 보려고 해요. 제가 딱 어떤 사람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더라고요. 대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한 번 이야기해볼게요. 처음에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이 막막했는데, 일대기로 모아놓고 보니 쉽게 써지더라고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추천합니다. 생각보다 잘 해온 나를 보며 뿌듯한 점도 있고, 부족한 모습도 또렷이 보여서 보완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더라고요. 대외활동, 아르바이트의 경험도 많이 있지만, 지금의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직업 위주로 소개해 볼게요. 시작합니다.     


스타트업 마케팅 인턴(2013~2014)     


대학교 3학년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학교 수업 시간에 카카오 창업 멤버인 선배님의 특강을 듣고 스타트업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그해 겨울 방학 때 병원 찾기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굿닥의 인턴 모집 글을 보고 지원했다. 그렇게 실전 마케팅을 배웠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구글 광고, 블로그, 앱용 콘텐츠 제작, 인플루언서와 협업, 타 서비스와의 컬래버레이션 등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다양한 채널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출근하면 콘텐츠를 만들다가도 서울역에 나가 오프라인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거의 매일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밤 11시에 퇴근했다. 정말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고 다시는 스타트업에 발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때 배운 마케팅으로 다음 회사에서 성과를 이루게 된다.     


외식 프랜차이즈 마케팅 매니저(2015~2017)     


아버지는 항상 대학까지만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고, 그 말을 지키셨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일을 시작했어야 했다. 학교 다닐 때 방송국 FD, 스타트업 인턴, 아르바이트 등 진로를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졸업하는 날까지 진로를 정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집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블로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당시만 해도 회사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회사의 사업은 외식창업컨설팅, 프랜차이즈 사업, 직영 레스토랑 운영, 식자재 가공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나의 레스토랑에서 시작해 5년 동안 키운 사업의 결과였다. 그런데 출근하고 보니 본사에는 대표님과 회계 담당 직원 1명만 남아있었다. 사업을 키우기는 했는데, 관리가 힘들어서 본사 직원들을 다 내보낸 상황이라고 했다. 대표님은 경기가 어려워서 외식 프랜차이즈 창업은 수요가 적으니 개인 창업 컨설팅을 홍보해서 키워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홍보 방법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대뜸 직원을 뽑을 수도 없고 비용 부담이 적은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한 것이다.  


대표님의 전략은 정확하게 성공했다. 회사는 나를 채용함으로 인해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한 자릿수였던 블로그 방문자 수를 두 달 만에 세 자릿수로 올렸다. 또 기존에 광고 대행업체에 맡겼던 검색광고 시스템을 직접 운영하며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키워드를 관리하고, 광고 운영 시간을 세부적으로 조정하면서 효율을 높였다. 그 결과 신규 컨설팅이 0에 가까웠던 외식창업컨설팅 수업이 두 달 만에 매출 1,000만 원을 돌파했고, 6개월 후에는 평균 월 매출 2,000만 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표님이 직접 수업하던 메뉴 컨설팅 수업을 혼자 할 수 없어 정규 강사분을 채용했고, 본부장님도 새로 채용했다. 그러는 동안 회사에서 정규직 제안을 받았고 연봉 협상을 통해 기존에 희망했던 회사와 같은 조건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1년 6개월 정도 근무하며 회사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온라인으로만 사람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외식 창업 세미나를 열어 오프라인으로도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 사람들을 모았다. 정체되어 있던 프랜차이즈 사업도 활성화되었고, 국비지원 훈련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사와 협상해서 중간에 연봉을 더 올리긴 했지만, 서울에서 월세 생활을 하기에는 빠듯했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의 구조적인 부분이었다. 사업장이 나누어져 있어 본사의 근로자는 항상 5인 이하였다. 법적으로 초과 근무나 대체공휴일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없었다. 법에서 정한 휴일을 인정받지 못하고, 연차가 없는 회사 그리고 대체공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것이 큰 단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휴가를 받지 못했고, 화환이나 상조금도 없었다. 복지가 거의 없는 일터에서 근무하다 보니 복지가 얼마나 근로자의 장기근속에 중요한 요소인지 알게 되었다.     


금융권 은행원(2018~2020)     


그래서 세 번째 직업은 은행원이었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 실수령 300만 원 이상의 월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당시 내 조건으로 초봉 4,000만 원 이상을 받으려면 금융권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법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규모의 회사를 원했다. 그렇게 첫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첫 번째 도전에 최종 합격까지 할 수 있었다. 이직의 조건이었던 연봉, 연차, 복지 모든 것이 완벽한 곳이었다. 아, 맞다. 연차는 있었는데, 없었다. 연차는 있지만 거의 쓰지 않고 연말에 연차 보상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연차 보상금은 꽤 달달했다. 어차피 일해야 한다면 돈이라도 더 주는 곳에서 해야 함을 다시금 느꼈다. 은행원도 적성에 잘 맞았다. 시재가 안 맞는 일이 많은 것은 큰 문제였다. 사실 시재가 틀리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인데, 은행원은 손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영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단골 고객을 잘 만들었고, 앱 가입, 보험 가입 등 영업도 잘해서 디지털 금융 추진 우수 직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원래 2년 정도 바짝 일하고 전세 보증금을 모아 서울에 다시 올라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좋았고, 업무도 좋았고 복지와 급여가 좋았던 회사를 떠나기 쉽지 않았다. 기존에 계획했던 시간을 조금 넘겨 2년 6개월의 근무를 끝으로 퇴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2021)     


지금까지 내가 있기까지 살아온 길을 쭉 써봤다. 새로운 회사에 이직을 준비하며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데, 자기소개만큼 막막한 항목도 없다. 오죽하면 7년 전 스타트업 지원 당시 이력서를 꺼내 봤을까. 7년 전 지원서를 보며 솔직하고 담백한 자기소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때는 업무와 회사에 대한 애정으로만 지원서를 작성했던 시기다. 그때보다 더 프로답게 일할 자신은 있지만, 그때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이력서에 나를 소개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보니 대학생 때부터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스스로 위로해 주고 싶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편하게 살려면 편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만 나의 한계를 규정짓고 싶지 않았다. 회사가 없어도 한 달 생활비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퇴사하고 싶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많이 받는데, 한 명 한 명 심층 상담을 통해 ‘퇴사 병’을 치료해 주고 있다. 프리랜서의 삶은 생각보다 더, 더, 더 힘들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회사 없이 혼자 일하는 힘듦에 대해 글을 써봐야겠다.     


“The value of experience is no in seeing much, but in seeing wisely.”     


“경험의 가치는 많이 보는 것에 있지 않고,

현명하게 보는 것에 있다.”    

 

경험을 통해 얻은 것,     


여러 회사를 거치며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 명확하다. 내가 잘하는 '일'과 내가 원하는 '일'에 관한 생각이 뚜렷해진 것이다.     


첫 번째는 나에 대한 자신감이다. 어디서든 밥값 이상을 했다.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일하기 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인턴을 할 때도 항상 받은 것 이상으로 일했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성과는 잘 나왔지만, 내가 빨리 지쳤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에 맞는 근무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회사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시키는 일은 다 했다. 남한테 빚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자유분방함을 이기는 순간이 많았다. 맡은 일은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 해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차피 열심히 일해야 한다면 돈 많이 주고, 복지 좋은 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두 번째는 내가 잘하는 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업종은 달랐지만, 내가 하는 일의 핵심은 간단했다.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하고, 직접 만든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게 마케팅이라면 나는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콘텐츠 생산자인 시대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굿닥에서 일할 때도 기존에 건강 정보 콘텐츠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좋게 꾸몄다면, 내가 제안한 콘텐츠는 직접 겪은 의료 정보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외식 회사에서 일할 때도 메뉴 컨설팅과 강사의 정보를 소개하는 것보다 실제 수강생들이 하루 만에 얼마나 성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솔직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인터넷에 메뉴 컨설팅을 소개하고 직접 상담까지 진행했기 때문에 고객들이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 때, 제목을 붙일 때 항상 고려했다. 고객 상담과 온라인 마케팅을 동시에 진행하며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결핍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결핍을 잘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궁금증을 나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사람들 생각이 다 다른 것 같지만,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남들도 원한다. 또 내가 모르는 것을 남들도 모른다. 내가 보고 싶은 글, 나라면 구독하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1.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 도전     

네이버 블로그는 나와 결이 잘 맞는 SNS 채널이다. 여기서만큼은 인플루언서로 인정받아야겠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또 다음 대세 플랫폼은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디서는 1등은 살아남는다. 네이버 인플루언서 역시 포화상태로 선정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한다. 그렇다면 될 때까지 도전하고 마지막 남은 한자리를 내가 쟁취해야겠다.     


2. 마케터로 입사하기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마케팅은 범위가 매우 넓어서 개인의 역량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단 2달의 짧은 경험으로도 2년의 밥벌이를 할 수 있었을 만큼 실무를 다루는 것은 큰 배움이 있다. 마케터로 근무하며 마케팅 트렌드와 현직자의 관점에서 더욱 전문성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마케터로 작은 연봉을 받아도 괜찮다. 연봉을 상쇄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몹시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나한테 직장이란 나와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취업을 위한 회사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도전해 볼 생각이다.     


3. 성장에 초점을 맞춘 블로그 안내서 만들기     

브랜딩. 모두가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 수준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블로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많다. 과거 현직에서 일하며 광고 시스템을 직접 다뤘기 때문에 네이버에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하고, 어떤 글이 광고 단가가 높은지 잘 알고 있다. 당연하게 알고 있던 거라 굳이 정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애드 포스트 광고 단가와 관련된 글이 생각보다 수요가 많았다. 어려서부터 여행 가이드를 하고 싶었는데, 블로그 가이드가 되어 블로그 성장에 초점을 맞춰 안내서를 만들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고마운 사람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내 인생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돌다리가 있어도 바지를 걷어 올리고는 강물에 발을 넣었다. ‘첨-벙’ 발을 담그고 나면 옷이 물에 젖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리저리 물을 튀기며 신나게 놀았다. 신나게 즐기다 보니 어느새 강 건너편에 도착했다. 강을 건너며 미끄러운 바위를 밟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크게 다친 곳 없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내가 돌다리 안 두드리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봤는데, 그래도 별일 없더라.’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120세까지 살아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이제 겨우 강 하나를 건넜다. 앞으로 내 인생에 펼쳐질 강이 얼마나 깊고 넓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또 돌다리를 두드리지 않을 것이고 ‘첨-벙-첨-벙’ 개구쟁이처럼 인생을 즐길 것이다. 왜냐면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든든한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항상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며 나의 모든 선택을 지지해 준 부모님이 있다.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던 20대는 사실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했다. 그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내 곁을 지켜준 10년 지기 친구들이 있다. 부족하고 또 부족했던 신규직원인 나를 어르고 달래며 하나하나 알려준 선배들이 있다. 퇴사 전에도, 퇴사 후에도 내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후회 없이 해보라며 물심양면 지원해 주는 남자 친구가 있다.  

   

아마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물에 떠내려갔든, 돌다리에 걸려 넘어졌든 무슨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내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더 성공하고 싶다. 내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기에 힘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보답할 수 있는 재력과 영향력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많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더 빨리 찾아가기 위해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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