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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Jul 18. 2021

왜 이 수업을? 1부

주제 탐구 보고서 쓰기 수업을 하며

광화문 교보문고는 계절마다 글판을 새로 바꾼다. 올여름의 글판은 김경인 시인의 ‘여름의 할 일’의 시구이다.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한 뒤, 우연히 보게 된 이 시구가 내 지난 수업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는 사람의 밝음과 그늘을 마주한다. 익숙한 존재들의 삶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삶의 지평은 늘 좁고 평평하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균열과 파열이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학생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굴곡진 삶을 버텨내는 존재의 그늘을 경험하게 하는 일. 그 경험이 우리를 소통하게 하고, 누군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다양성(diversity)을 주제로 다양한 삶의 양상을 포착해 낸 책을 섬세하게 읽고 한 편의 글을 썼다. 비혼, 장애인, 인종 차별, 이주민, 학교 폭력, 가정 폭력, 성폭력, 가난, 플랫폼 노동자,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의 삶과 함께했다. 정상과 일상으로 규정된 삶의 범주에서 살짝은 비켜난, 가장자리의 삶에서 느끼는 삶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부지런하게 썼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의 저자 홍승은은 수많은 북 토크에서 ‘왜 글을 쓰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홍승은은 아래와 같이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은 위험하다. 내 세계를 타인에게 보이는 일,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고개 돌리지 않는 일. 나에게 읽고 쓰는 과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아직 나에게도 깨지 못한 편견이 많고, 사회에도 깨지지 않은 침묵이 많다. 강요된 평화가 아닌 정직한 불화를 위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2021년 1학기는 몇 개의 단어로 규정되는 납작한 삶을 입체적으로 부풀리는 시간이었다.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덧씌워진 삶의 껍질을 벗기고, 정상과 비정상, 다수와 소수라는 범주로 구획하는 기준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은 굳어져 단단한 벽이 되곤 한다. 그 벽이 만드는 그늘에도 누군가의 삶은 자라고 있다  학생들은 글로 그 벽을 부수고, 삶의 지평을 넓혀 갔다. 가려지고 소외된 자리에도 누군가의 삶이 빛나고 있음을 들여다보는 뜻깊은 순간이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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