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올린 '살맛 나는 집'을 과제로 제출했다. 여러 가지 첨삭 내용이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은 첨삭은 '그러니 살맛이 나려면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문장을 '불편하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로 수정해 주신 것이다. 왜 이렇게 바꾸셨을까? 다른 수강생의 글을 읽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다른 수강생 한 분이 캄보디아를 여행한 뒤 빈민층의 수상가옥에 대한 글을 쓰셨다. 그 글에 '척박한 환경에 산다고 해서 그들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문장을 '아닐 것이다.'로 수정하셨다. 이어 '불행할 수도,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죠. 단정적인 문장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단언하시면 안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내 글에서 '살아야 한다.'를 '괜찮겠다.'로 바꾼 이유를 알았다. 글을 쓸 때면 반성과 교훈을 드러내며 마무리 짓기 위해 단정적인 어조를 쓸 때가 많았다. 마치 인생을 다 깨달은 것처럼. 그런데 사실 그게 내 생각이 아닐 때가 많다. 생각은 맞지만 100%가 아닐 때도 있다. 그런데 감동을 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렇게 단정적으로 글을 닫을 때가 많다. 그런데 어디 삶이 그런가.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게 틀리고, 틀렸다고 생각한 게 맞고,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모든 게 불확실한 시대에 내가 생각한 가치가 맞다고 우겨대는 것은 얼마나 빈약하고 허약한가.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 글은 훨씬 부드럽다. 닫힌 세계 안에 갇히지 말아야지. 열어두고 고민하며 흔들리는 게 삶이라는 걸 드러내야지. 또 한 번 배웠다.
액자 구조, 회상 구조로 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안정감이 생깁니다.
독자가 궁금해하는 부분, 더 설명해 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을 더 서술하셔야 합니다.
마지막 문장이 쉽게, 아쉽게 끝날 때가 많습니다. 글의 전체 분위기를 포괄할 수 있는 적확한 표현을 꼭 고민해 보세요.
글은 그림을 그리듯 쓰셔야 합니다. 풍경과 정경을 쓸 때는 그게 눈에 보이듯 쓰셔야 합니다.
트렌드 코리아를 꼭 읽어 보세요.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매년 읽어 봅니다.
따옴표, 쉼표가 너무 많으면 글을 읽을 때 거슬립니다. 자제하세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부산 원도심은 꼭 가보셔야 합니다. (초량 이바구 길, 비석마을, 감천 문화 마을, 산복 도로, 86번 버스 타고 가면 산복 도로 볼 수 있음)
'따뜻한 찌개 냄새'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 북적거리는 냄새'보다는 훈기, 온기 정도로 표현하는 게 낫겠습니다.
'시든 지 오래다.'라는 표현은 내가 오래 지켜봤을 때 나올 수 있는 문장입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었다면 '시들었다.'로 써야 합니다.
'푸석하게 메마른 벽지'와 '엄마의 주름'이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습니다. '퍼석한 피부결'로 대응시켜야 한결 비유의 맛이 살겠지요?
'기미처럼 거뭇거뭇 한 흔적, 매끄럽고 깨끗한 삶의 표면' 같은 표현이 좋습니다.
글 마지막에 '웃음이 난다'도 좋지만 훨씬 좋은 표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마무리하기에 정확한 표현을 고민해서 퇴고해 보세요.
김자옥 씨처럼 살아생전에 자기가 아끼고 좋아하던 옷을 입고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수강생 글 '(비둘기를 향해) 주차하려고 빵빵 소리를 내어도 꿈쩍 않는다. 사춘기 녀석의 고집을 보는 듯하다.' (이런 문장은 정말 자식을 키워 봐야 나오는 문장인 듯)
다른 수강생 글 '아내의 얼굴은 얼마나 환하게 펴질까. 그것을 상상하니 나의 마음도 활짝 펴진다' (구겨졌던 얼굴과 마음이 펴진다는 표현이 신선했다.)
글은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있는 상황들을 추상적으로 갈무리해서 애매하게 써 서는 안되겠다.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없던 영성도 절로 생길 것 같았다.'에서 '문'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왜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해 종교적 신심이 생겼는지가 납득이 됩니다.
글을 의도적으로 삶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화가 이루어집니다. 억지로라도 연결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