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끝났다. 아이들과 추억을 나눈 뒤 교무실로 올라간다. 책상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다. ‘감사했어요. 얼굴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자리에 안 계셔서요.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반 학생은 아니었다. ‘나한테 감사할 만한 일이 있었나?’ 기억을 헤집어 봐도 딱히 떠오르는 흔적이 없다. 살갑게 대화를 나누던 사이도 아니었다. 별일 아니겠거니, 모든 선생님께 남긴 마음이겠거니 생각하며 편지를 서랍 속에 넣어 둔다.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찾아왔다. 작년에 졸업한 제자 몇 명이 찾아와 인사를 나눈다. 아이들과의 대화 주제는 비슷비슷하다. 수업과 학점, CC와 연애, 조만간 가야 할 군대 걱정까지. 마치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마냥 비슷한 대화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퇴근하기 직전 한 아이가 불쑥 교무실로 걸어 들어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OO인데, 기억하시겠어요?” 3개월 전 마음을 남기고 간 아이가 예쁘게 염색하고 화장까지 했다. 달라진 모습에 잠시 알아보지 못하다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당연하지, 오랜만이다. 그때 편지 쓰고 갔었잖아. 그치?” “네 맞아요. 괜찮으시면 사람 없는 곳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응, 당연하지. 밑으로 내려가자”
조용한 공간을 찾아 헤맨다. 장소가 마땅치 않다. 결국 1층 중앙 현관 구석에 어색하게 선다. ‘왜 교무실에서 말하지 못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기댈 것 하나 없는 곳에 나란히 서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아이도 즐겁게 웃으며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대학 생활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문득 꺼내지 못한 서랍 속 편지가 떠오른다. “나한테 뭐가 그렇게 감사했어?”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내 기억 속 흔적을 풀어 헤쳐 놓는다.
수업에 들어가니 그 아이 주변을 남자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다. 번지는 웃음과 미소가 차갑다. 가까이 갈수록 조롱과 비아냥이 들린다. 그 틈 사이로 책상에 올려진 화장품이 눈에 띈다.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고, 이런 건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게이 아니냐고 힐난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상황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제자리에 앉힌 뒤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흥분은 학생 지도의 최대 걸림돌이다.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과 꾸지람이 섞인 질책을 10분가량 쏟아낸다.
“메트로섹슈얼(metro sexual)이라는 말 들어 봤니? 스스로를 가꿀 줄 아는 현대 남성을 뜻하는 말이야. 자기관리 하는 세련된 남성상을 의미하기도 하지. 다들 지큐, 아레나 같은 잡지 본 적 없어?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은 허상이야. 정의할 수 없으니 실체를 알 수 없지. 경계와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할 줄 알아야지. 남자가 화장하는 걸 이상하게 보는 건 촌스러운 행동이야. 다들 몰랐으니 그럴 수 있어. 지금 내가 가르쳐 줬으니 달라져야겠지?” 지금에야 남자가 화장하는 게 별일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남자가 화장하는 게 어색하게 보일 법도 했다.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염려한 건 낯선 타인을 향한 본능적인 밀어냄이었다. 다른 존재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이었다.
난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의 잘못을 발견하고 가르치는 일은 지루하게 반복된다. 그러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쉽게 지워 버린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는 아니었던 거다. 누군가가 자신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경험을 처음 겪었다는 아이. 그 고마움을, 감사함을 몇 개월이나 간직하다, 담담한 편지로 건네준 것이었다.
“사실은 제가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걸 숨기고 감추느라 늘 힘들고 서러웠어요. 그 자리에서 저를 응원해 주셔서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말끝에 펑펑 울던 그 아이의 눈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슬픔이 쏟아지는 자리에서 난 기꺼이 그 아이가 기댈 곳이 되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위치와 상황을 따져가며 타인을 대한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안에서 숨 막혀 죽을 듯한 아이들이 있다.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을까 봐 아닌 척, 괜찮은 척 연기하는 순간들. 자신을 드러내려면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는 두려움을 온전히 감수해야만 한다. 그 몫을 누군가의 짐으로 맡겨두는 게 과연 맞는 걸까.
가끔 그 아이의 삶을 떠올려 본다. 세상이 그대로니 달라지지 않았을 것만 같다. 가려진 그늘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상상해 본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공간에서, 큰 목소리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숨기고 감출 것 하나 없이, 활짝 드러내도 안전한 공간에서 행복을 쏟아내는 그 아이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