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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Jul 13. 2023

가정통신문은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렴

 가정통신문을 배부하고 회수하는 일은 늘 번거롭다. 놔두고 가는 아이가 부지기수고, 제때 가져오는 아이는 드물다. 나무라도 잘 바뀌지 않는다. 최후의 수단은 여분을 챙겨가는 것이다. 동료 선생님의 독촉을 받지 않으려면 아이들에게 보호자 서명까지 하라고 독촉하는 수밖에. 보호자 필체를 따라 하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펜을 바꿔 가며 어른 글씨를 흉내 내는 아이들. 글씨에 귀여운 장난기가 담겨 있다.


  그렇게 걷은 가정통신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호자 서명 칸에 모두 엄마 이름을 적는다는 것. 비단 가정통신문뿐일까. 아이의 신상과 관련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 교사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느덧 교육과 엄마는 등호 관계가 되어 버렸다. 나도 한동안 그걸 당연하다 여겼다. 두 명의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일도 번거로운 시간 낭비다 싶었다. 관행이 무서운 이유다. 질문과 의심을 가로막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게 만든다.


  하루는 교사인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정통신문을 잘 가져오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도 토로했다. 친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근데 난 어머니한테 가정통신문 보여드리라고는 안 해. 우리 학교에는 워낙 조손, 한부모 가정이 많아서 그런 말 쓰기가 좀 그렇더라. 대신 어르신이라는 말을 써. 집에 계신 어르신 보여드리라고.” 그 친구는 부산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곰곰이 과거를 되짚어 본다.


  우리 집은 재혼 가정이다. 엄마는 결혼한 뒤 누나를 낳았지만, 아빠의 폭력과 외도가 반복됐다. 결국 외가 친척들이 나서 엄마의 이혼을 종용했고, 결국 엄마는 이혼했다. 누나는 오랜 시간 엄마, 할머니와 살았다. 시간이 흘러 엄마 나이가 30대 후반이 됐을 때쯤 누나가 중학교에 가야만 했다. 80년대는 촌스러운 법이 많았다. 자녀의 중학교 입학에 호적 초본이 필요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이혼한 남편에게 연락했고, 그렇게 다시 연이 닿아 재혼해 나를 낳았다.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법칙은 한 인간의 삶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빠는 여전히 폭력과 외도를 일삼았다. 낯선 여자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소리 지르던 풍경을, 안방에 있던 엄마를 내쫓던 장면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제발 이혼하라는 내 울음에 엄마는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 결혼해야지. 엄마, 아빠가 온전히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괜히 아빠 없는 집안에서 자랐다고 누가 흉보면 어떡하니.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그래도 아빠를 만나 네가 태어났잖니. 싫어도 아빠고, 미워도 아빠야. 그게 천륜이고 인륜이란다.”


  그렇게 엄마는 집안의 생계와 양육과 교육을 책임졌다. 아빠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욕하면서도 감쌌다. 내 세계에서 엄마는 슈퍼우먼이고, 아빠는 조커였다. 조커는 무찔러야 할 악당이었지만, 세상에서는 그 둘이 만나야만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 누나와 나라는 4인 가족의 틀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 가족 그대로였지만, 그 어느 가족보다 비정상적으로 살았다. 정상 가족의 탈을 뒤집어쓴 비정상 가족에서, 난 늘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상처 깊숙이, 정상 가족을 향한 부러움이 무겁게 박혀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친구의 말을 들은 이후로 엄마, 아빠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보호자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학기 초 비상 연락망을 수집할 때도 보호자 1(필수), 보호자 2(선택)로 구분했다. 대다수 아이가 두 빈칸을 다 채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많았다. 물론 빈칸이 부재를 뜻하지는 않을 테다. 가족을 향한 아이의 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락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존재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마치 어렸을 적 나처럼. 두 칸을 다 채운 아이는 보호자 1에 누구를 적었을까? 엄마일까, 아빠일까, 할머니일까, 할아버지일까, 혹은 다른 존재일까. 채워진 것과 채워지지 않은 것 사이에서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가족을 대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살짝 엿보곤 한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온라인 수업이 익숙지 않을 때다. 수업이 시작되고도 접속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문자 전송 시스템을 사용해 일일이 문자를 보내야 했다. 화면에 아이들의 비상 연락망을 띄워 놓고 출석 체크와 동시에 연락한다. 한 번은 깜빡하고 화면 공유 기능을 해제하지 않은 채로 비상 연락망을 띄워 두었다. 1-2분가량 반 아이들의 비상 연락망이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그때 한 학생이 채팅으로 “선생님 우리 반 아이들 전화번호가 다 보여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황급히 창을 껐으나 이미 번호가 노출된 상황이었다. 전화번호 유출보다 더 걱정되는 건, 보호자 2가 채워지지 않은 아이들이 드러났다는 거였다. 빈칸이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으나, 아이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아이들이 지닐 누군가를 향한 선입견이 두려웠다. 이후 빈칸이 드러난 아이들을 만나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괜찮아요, 별일 아닌데요, 뭘.”이라고 말한 아이가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사과하고 있는 걸까. 비상 연락망 속 빈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걸까. 해결되지 않은 물음이 내 어두운 과거에 진흙처럼 가라앉아 엉키기 시작했다.


  양쪽 보호자가 다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정상 가족을 엄마와 아빠라는 특정 존재로 환원하는 것, 존재한다면 엄마가 교육의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아직도 나를 보며 “엄마, 아빠 살아있을 때 결혼해야지.”를 외치는 엄마만을 탓할 일일까. 정상 가족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의 무심함을 탓할 수는 없을까.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각자의 역할이 규정된 정상 가족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향한 상상을 금지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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