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이 찢어진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그런 적이 없어 나도 대처법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마도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할 듯하다. 사후 피임약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겠지. 아니면 비밀을 공유해도 좋을 아주 친한 친구에게 물어보거나. 36살 먹은 나도 성과 관련된 일은 늘 어렵고, 조심스러운데, 18살 고등학생이라면? 만약 삶을 마주하는 두려움이 나이와 반비례한다면 나보다 2배는 더 당황하고 헤맬 것이 분명하다.
학생의 사생활을 훔쳐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학생의 성관계 사실을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적이 있다. 아이들이 과제를 가져오지 못하면 가끔 교사의 컴퓨터를 빌릴 때가 있다. 보통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간다. 모든 학생의 과제를 출력해줄 수 없으니 웬만하면 잘 빌려주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가 사정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날도 그랬다.
남학생 한 명이 조심스레 교무실 문을 연다. 우리 반 아이가 아닌 걸 보고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키가 크고 멀끔한 아이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선생님, 혹시 노트북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과제를 출력해야 되는데, 담임 선생님이 안 계셔서요.” 보통이라면 허락하지 않지만 담임 선생님 다음으로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흔쾌히 허락한다. 1-2분 정도 지나니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출력된 과제를 챙겨 조심스레 교무실을 나선다. 나도 내 자리에 돌아와 업무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네이버 화면을 켜고 메일함에 접속한다.
내 메일함은 늘 스팸으로 가득 차 있다. 안 읽는 메일이 허다하다. 중요한 메일만 읽기에 ‘읽음 표시’가 된 메일은 늘 눈에 띈다. 창을 내리다 보니 ‘읽음 표시’가 된 메일이 보인다. 그런데 제목이 낯설다. ‘RE: 네이버 지식인 질문에 답변이 달렸습니다.’라니. 나는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린 적이 없는데? 별생각 없이 메일을 클릭한다.
메일 속 내용이 단순하고 강렬하다. 질문 내용은 ‘여자친구와 섹스한 뒤에 콘돔이 찢어진 걸 알았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다. 아뿔싸, 내 이메일이 아니구나. 순간 읽으면 안 된다는 망설임보다 검지가 더 재빠르게 움직인다. 답변자는 일반인이다. 검색하면 나올 법한 뻔한 내용은 ‘답변 채택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황급히 로그아웃하고, 창을 닫는다. 윈도우 배경 화면 위로 섹스, 콘돔, 18살, 남학생의 잔상이 얽히기 시작한다. 노트북 화면을 닫고 눈을 감으니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충돌한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훔쳐봤다는 자책감, 제자의 성관계 경험을 알게 됐다는 당혹감, 앞으로 이 아이를 2년은 더 봐야 한다는 민망함, 이 일을 사과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혼란까지.
어찌 됐든 아무렇지 않게 그 아이를 대해야 한다. 섣불리 내 실수를 이야기하며 민망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문득 ‘다양성을 주제로 소설 읽기’ 수업을 하면서 책 목록에 넣어둔 ‘청소년 임신’과 관련된 소설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고르면, 같은 책을 고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뒤, 모둠별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이다. 갑자기 그 아이가 선택한 소설이 궁금하다. 노트북 화면을 다시 열고 그 아이가 선택한 소설 제목을 확인한다. 그 아이가 고른 소설은 ‘키싱 마이 라이프’. 예상대로 청소년 임신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타인의 존재를 수용하자며 시작한 수업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선택한 소설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삶과 관련된 소설이었다.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다루면서도, 내가 속한 교실을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진공 상태로 간주한 건 아니었을까. 4시간의 독서, 2시간의 대화, 이후 보고서 작성으로 꽤 오래 진행되는 수업에서 그 아이를 힐끔힐끔 훔쳐본다. 보고서를 받기 전까지 그 아이가 나눈 대화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진솔하게 털어놓았을까?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아이를 낳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결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드디어 보고서가 제출된 날, 그 어느 모둠보다 그 아이가 속한 모둠의 보고서를 먼저 열어 본다. 소설의 내용을 받침 삼아 청소년의 성과 학교의 성교육에 대한 흥미진진한 대화가 기록돼 있다. 그 아이의 말이 논리적이다. 청소년은 안전한 공간에서 상호 합의 하에 섹스할 수 있으며,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학교의 성교육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소설 제목의 의미를 해석하는 아이들의 대화로 끝을 맺었다. 그 아이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나는 ‘키싱 마이 라이프’라는 제목이 자신의 삶과 가까워지라는 의미라고 생각해. 처음에 주인공은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인생에 극단적인 생각도 하잖아. 그런데 그 상황을 극복하고 아이를 낳고 결국 어머니에게도 말하고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잖아. 어떠한 순간에서도 내 삶과 멀어지지 말고 가까워지자는 뜻 아닐까?
보고서 속 아이는 욕망을 지닌 자신의 삶을, 선택을 사랑하는 주체였다.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숨기고 감추며 구석진 곳에서 은밀하게 나눠야 할 부끄러움으로 치부하는 나와는 달랐다. 성인이 된 후 술자리에서 주변 남자들의 음담패설과 과장된 경험담으로 성을 배운 나와도 달랐다. 대낮의 한 교실에서 소설을 읽고 삶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교사가 된 이후에도 실질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청소년의 성에 무작정 개방적일 수는 없었다. 어쩌면 교복을 보며 학생다움을, 학생다움을 공부로 치환하는 지루한 은유 속에 갇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 학생은 욕망의 냄새가 탈취된, 얼룩이라고는 없는 표백된 존재여야만 했다. 그 얼룩이 누군가의 삶일 수 있음을, 그 삶을 지우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후회와 반성, 미안함을 직접 말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대신 그 마음을 아래의 기록으로 남겨 전했을 뿐이다.
'다양성을 주제로 실시한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에서 '청소년 임신'을 주제로 한 <키싱 마이 라이프> 책을 선택하여 자신의 감상,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함. (중략) 청소년의 본능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수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함을 타당하게 논증함. 특히 소설 제목인 '키싱 마이 라이프'를 '어떠한 순간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삶에서 멀어지지 말자'라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작품의 주제를 개인적,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해서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