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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Jul 17. 2023

전달되지 못한 7년 만의 사과

  옛 제자에게 연락이 오면 반갑다. 대부분 시험 합격과 취업 성공을 자랑하며 감사해한다. 물론 아이의 인생에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님을 안다.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 힘들고 지치는 일들이 많았겠지. 통화는 늘 학창시절을 향한 그리움으로 끝을 맺는다. 흐릿해진 추억을 끝없이 되새김질하는 아이들을 보며, 고단한 현실 살이를 떠올리곤 한다. 아무 생각 없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을, 나는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그런데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제각각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일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카톡 알림 창에 낯선 이름이 뜬다. 7년 전 제자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의 담임을 한 이듬해 나는 그 학교를 떠났다. 이 아이와도 친밀하게 지내긴 했으나 학교를 떠난 이후로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선생님,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로 시작된 문장이 건조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기는 한데, 답장하기가 꺼려진다. 그래도 제자 연락인데 어쩌랴.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며 번호를 누른다.


  아이가 웃으며 식상하게 다정한 안부를 건넨다. 졸업 이후 내 생각을 가끔 했고, 지난 학창 시절이 그립다며 웃는다. 나도 그 시절이 좋은 추억이었다며 웃으며 답한다. 근데 왠지 모르게 대화가 겉돌며 미끄러진다. 어색한 쉼과 침묵이 반복된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이야기가 아닌 게 분명하다. 무슨 일로 연락했냐는 말에 드디어 연락한 진짜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내 기억에 심각한 폭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장난이 좀 과하긴 했다. 같은 반 장애 학생을 놀리는 일이 잦았다. 약간의 인지 장애가 있던 아이의 행동과 말에 사사건건 참견했다. 장애 학생의 실수를 부풀리며 지적하거나, 장애 학생이 가는 길을 가로막은 채 당황하는 아이를 비웃곤 했다. (조심스럽게 판단하건대) 심각한 폭력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괴롭힘이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아이를 불러 지도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장애 학생도 어떤 경우엔 그 아이와 잘 어울려 놀았다. 분명 괴롭힘인데 괴롭힘이 아닌 애매한 일들의 연속. 당시 학생부장과 상의하고 절차대로 징계할까도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무사와 다행에 안도하며, 추억 속에 그 일을 묻어두었다.


  그 아이의 울음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다. 울먹임 때문에 발음이 뭉개지기 시작한다. 2학년에 올라간 뒤 심한 왕따와 괴롭힘을 당했단다. 순식간에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됐고, 괴롭힘의 충격으로 졸업 이후 정신과까지 다녔다는 게 아닌가. 울먹임의 끝은 후회였다. 지금에서야 자신이 장애 학생을 괴롭힌 행동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았다며 반성하기 시작한다. 7년이 지난 뒤의 사과라니, 그것도 당사자가 아닌 그 당시 담임인 나에게 하는 사과라니. 희미한 추억의 구석에 웅크린 어둠을 끌어올리는 일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 반성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해서였을까. 그래도 누군가의 슬픔 앞에 이런 마음을 꺼내 놓기는 민망하다. 어색한 위로를 건네 본다.


  마치 교실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하다. 이렇게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으니, 죄책감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본다. 네 마음 편해지자고 괴롭혔던 아이 앞에 7년 만에 불쑥 나타나는 것도 조심스러우니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영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내가 대신 사과를 전해주겠다고도 제안한다. 그 아이의 침묵이 이어진다. 희미한 목소리로 그저 미안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답한다.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말을 들었을 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에 동시에 선 아이의 지난 과거가 쉽사리 그려지질 않는다. 폭력의 현장에서 한 발짝 비켜나기만을 바랬던 내 마음을 되새기는 일도 괴롭다. 마치 사과 두 쪽처럼 선악으로 쪼개지지 않는 게 세상일이라 생각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결국 어지럽게 흩어진 마음을 애써 구겨버린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일 뿐이라며, 더는 생각하지 말자며 추억 속 모퉁이에 버려 버린다.


  몇 개월이 지나 다른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일을 한다. 주말이라 가족들이 가득하다. 옆 테이블엔 9-10살 자녀와 부모가 앉아 시끄럽게 대화를 나눈다. 부모의 질문이, 아이의 대답이 귓가에 내리꽂힌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듣던 부모가 흥분하며 큰 목소리로 외친다. “친구가 너 괴롭히고 때리면 아빠가 어떻게 하라고 했어? 절대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확 때려 버려. 알았지?”


  폭력의 순환고리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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