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이 30명이라면 청소년 퀴어는 몇 명일까? 최근 통계를 인용하고 싶지만, 청소년 퀴어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 차원의 조사는 8년 전이 마지막이다. 각종 정부 통계에조차 성 소수자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부터 살펴보자. 주기적으로 국가 단위 통계를 조사하는 미국에서는 13세-17세 청소년 인구의 약 9.5%를 청소년 퀴어로 추정한다.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할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마다 다르지만 조사 대상 청소년 중 최소 5.8%, 최대 12.7%까지 자신을 퀴어 정체성을 지닌 청소년으로 인식했다. 다양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바로 다문화이다. 국가적인 지원이 집중되고 있는 다문화 교육의 주요 근거는 바로 증가하는 다문화 아동의 수다. 우리나라의 2023년 다문화 아동 수는 몇 %일까? 3.2%다.
이제 숫자로 바꿔 생각해 보자. 저출생 시대니 한 학급을 20명으로 가정하면 한 반에 2명의 청소년 퀴어가 있는 셈이다. 그 두 명은 교탁 앞에, 창가 옆에, 혹은 교실 한가운데 앉아 있을 것이다. 한 학교에 보통 24학급이 있다면 전교에 48명의 청소년 퀴어가 매일 등교를 하고, 급식을 먹고, 수업을 듣는다. 반으로 치면 적게는 2학급 많게는 3학급을 청소년 퀴어만으로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 내 동아리로 따지자면 대략 7개 동아리를 구성할 수 있다. 이 아이들만으로 소규모 현장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런데 12년을 교사로 근무하면서 내가 만난 청소년 퀴어는 단 세 명(남 2, 여 1)이다. 단 한 번도 청소년 퀴어 동아리를 본 적도 없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청소년이 2000명이라면, 200명의 청소년 퀴어가 나와 한 공간에 있었다는 말인데, 대체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조차 않았던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학교라는 공간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곧바로 혐오와 폭력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마지막 조사였던 국가인권위원회(2015)의 연구를 살펴보자. 13세-18세 청소년 퀴어 200명 중 80%는 교사에게, 92%는 다른 학생에게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거기다 20%는 교사에게, 54%는 다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47.5%는 놀림이나 모욕을, 10%는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다. 모두 본인의 성정체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청소년 퀴어 5.1%가 성 정체성으로 인해 학교 활동을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고, 차별이나 괴롭힘이 두려워 스스로 학교 활동을 포기한 학생도 7.0% 해당했다. 8년이 지났으니 상황이 바뀌었을까? 해마다 늘어나는 학교 폭력 실태조사의 결과로 짐작해 보건대 늘어나면 늘었지, 줄었을 것 같지는 않다.
위협적인 공간은 왜 문제가 될까? 그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몸과 마음으로 드러난다. 특히나 건강한 정체성으로 자존감을 형성해야 할 청소년 퀴어는 오히려 정체성으로 인해 우울을 경험한다, 심리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으로도 이어진다. 청소년 퀴어의 자해와 자살 시도 비율은 일반 청소년과 비교해 매우 높다. 한 연구에 따르면 18세 이하 청소년 퀴어 623명 중 45.7%가 자살을, 53.3%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는 전체 청소년 자살 기도 및 시도 경험과 비교해 5배 가량 높다. 한 연구는 질병관리청이 2008년에서 2012년까지 매년 8만 명의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동성과 성 접촉 경험이 있는 학생은 이성과 성 접촉을 경험한 학생과 비교해 우울감은 2.23배, 자살 생각은 2,75배, 자살 시도는 4.18배 높았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면, 우리나라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학교 안팎으로 청소년 퀴어에 대한 상담 지원 시스템은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오래된 연구이지만 청소년 퀴어 중 상담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7.4%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의 청소년 퀴어가 상담받는 비율의 4분의 1수준이다. 드물게 진행되는 상담도 더디게, 어렵게 진행된다. 학교 내 전문 상담 교사들은 청소년 퀴어와의 라포 형성, 전문적 지식의 부족으로 상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청소년 지도사들 또한 공공 영역에서 청소년 퀴어를 지원한 전례가 없어 어려움을 호소한다. 학교 밖은 어떨까?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기관에서 최근 5년 동안 성소수자 상담에 관한 교육을 실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상담 교육 예산도 전혀 없었다는 점은 크게 놀라울 일도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사실 단순하다. 법과 제도의 미비다. 2007년부터 논의된 차별금지법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로 16년째 통과되지 않고 있다. 2016년 천재교육의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서는 ‘동성애는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질병’이며 ‘동성애자의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에이즈와 병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한다. 2020년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학생 인권 종합 계획에 ‘성소수자 학생 보호 및 지원’이라는 표현이 명시되었다는 이유로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종교 단체 등의 반대로 ‘성 소수자’라는 용어는 삭제되었다. 2023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기독교 계열의 단체가 내건 ‘청소년 문화 행사’에 밀려 서울 광장에서 쫓겨났다. 내가 소속된 부산시교육청 앞에는 어떤 단체가 매일 점심마다 성 혁명을 일으키는 잘못된 교육과정을 개정하라며 침묵 피켓시위를 한다. 비단 이뿐일까. 정부는 저출생 해결을 주장하며 이성애 중심의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정상 가족을 울부짖지만, 다양한 공동체의 결합을 인정하는 생활 동반자법은 윤리와 규범에 어긋난다면 반대한다.
청소년 퀴어의 삶이 불안하니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성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는 것은 권리이며, 성 소수자의 삶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라 일갈하고 싶다. 언젠가 바뀌리라 생각하면서도 현실은 참으로 녹록지 않다. 나는 학교가 청소년 퀴어에게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한다고 교무실 한 가운데 다양성과 관련된 수십 권의 책을 일부러 배치하는 것도 그 이유다. 교무실을 오고 가는 누군가가 교무실에 비치된 책을 보고 안도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너라는 존재를 지지하는 누군가가 서 있으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침묵으로 소리쳐 보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한 청소년 퀴어는 사회과 교사가 차별을 다루며 성 소수자와 관련된 주제에 대한 긍정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듣고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내 존재를 인정해 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유대감과 연대감이 청소년 퀴어를 살아 숨쉬게 한다. 힘들다는데, 고통스럽다는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존재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불가능하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도 얼토당토않다. 청소년 퀴어는 바로 당신 옆에 있다.
주석은 나중에 정리!
1) 본인의 성별적 특징이 남성 또는 여성이며, 성적지향은 이성애이고, 젠더 정체성은 시스젠더(성별적 특징=성별 정체성)라는 세 가지 기준을 하나라도 충족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성소수자라고 정의 할 수 있다(Sullivan, 2003).
2) 유성아, 김희정(2022), 전문상담교사의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교육혁신연구
3) https://www.dailian.co.kr/news/view/1095600/?sc=Naver
4) UCLA Law Institute (2020). LGBT youth population in the united states. Retrieved from
https://williamsinstitute.law.ucla.edu/publications/lgbt-youth-pop-us/
5)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07), 청소년의 가치관 조사, 6160명
6) 장재홍 외(2003). “청소년의 동성애에 대한 생각 및 현황 분석.”
7) https://www.sedaily.com/NewsView/29PS3N2V5N
8) 김지혜(2016), 성소수자 아동청소년을 위한 포용적 교육. 동향과 전망
9) 나영정 외(2014).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 보고서.
10)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7/05/2021070501474.html
11) Lee, D. Y., Kim, S., Woo, S. Y., Yoon, B., & Choi, D. S. (2016). Associations of health-risk behaviors and health cognition with sexual orientation among adolescents in school: Analysis of pooled data from Korean Nationwide Survey from 2008 to 2012. Medicine (Baltimore), 95(21),
12) 강병철, 김지혜(2006), 청소년 성소수자의 생활실태 조사. 한국 청소년개발원 연구보고, 6(15).
13) 유성아, 김희정(2022), 전문상담교사의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교육혁신연구
14) 유성아, 김희정(2022), 전문상담교사의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교육혁신연구
15) 공은선, 최나현(2022), 청소년 지도자의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사업 경험, 한국청소년연구
16)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110211650001
17) 정성조, 정용림(2022), 청소년 성소수자와 안전공간, ‘배제된 이들’이 만들어가는 대안 공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