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적글적샘 Jun 14. 2021

키오스크 앞에서 우는 사람들

고3 비문학 수업을 4시간 한다. 아이들은 지루해하지만, 비문학 수업 준비는 늘 즐겁다. 말라버린 활자 속 지식을 생생한 삶과 연결하려는 과정이 사뭇 뜻깊기 때문이다.

어제는 활성화 확산 이론과 관련된 제재를 분석했다. 개념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다른 개념과 연관됨으로써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제시문은 이 개념을 스마트폰 아이콘의 기능 인지 과정에 적용해 설명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아이콘 디자인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일수록 아이콘이 표상하는 기능을 빠르게 떠올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 말미에 아이콘의 기능을 인지하는 속도에 ‘세대’라는 변수가 개입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노년층일수록 추상적, 함축적 아이콘의 기능을 해석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글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끝난다.

오늘 아침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문득 일주일 전 일이 떠올랐다. 올해 나이 74, 동년배와 비교해 스마트폰을 잘 만지는 우리 엄마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슬쩍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추천된 영상만을 클릭해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고 싶은 영상을 찾아보지는 않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런 기능이 있냐고 되물었다. 우측 상단, 돋보기 표시를 클릭하고 원하는 단어를 적고 누르면 단어와 관련된 동영상이 뜬다고 설명해줬다. 그 순간 좋아하는 가수의 동영상을 더 많이 볼 수 있겠다며 웃는 엄마의 미소가 환하게 빛났다.

그 기억을 떠올리고 곧장 뉴스를 검색했다. 노인들을 위한 보급형 스마트폰의 아이콘은 노인 친화적일까. 그렇지 않았다. 2021년 3월 30일 자 뉴스를 보니, 서울디지털재단에서 고령층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돕는 표준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 표준안에 추상적인 아이콘의 디자인을 구체적으로, 숱한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기사는 서울디지털재단에서 노년층의 키오스크 기기 사용을 돕는 표준안을 제작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

평범한 아침 출근길에, 그날 수업해야 할 비문학 지문을 생각하며, 우리 엄마의 행복을 떠올렸다. 키오스크 기기로 주문을 하지 못한 자신이 서러워 딸에게 전화해 펑펑 울었다는 어느 노년의 삶이 바로 내 옆에 있었다. 그 순간 기술과 삶의 관계를 생각했다. 우리 모두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가 윤택해지리라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기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리라 확신하곤 한다.

정말 그런 걸까. 기술이 기술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되는 누군가를 포용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다수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의 과거를 지워버리는 우리의 선택은 과연 윤리적일까.


작가의 이전글 남성에게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