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 부르지 못하겠어서
혁이씨가 아프고 난 뒤로 수술 이후 혼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나에게는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엄마인 혁이씨를 할머니라 부르는 습관이다.
‘할머니.~ 여기 잡으세요.’ .
‘할머니~ 이렇게 하셔야죠.’
‘ 할머니 !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해요~’
‘할머니, 밥 먹어유’,
‘할머니 ~~~’
할머니라 부르면 혁이씨는 대체로 대꾸가 없다.
나이는 할머니일지 몰라도 스스로 진짜 할머니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테다.
하지만 할미 혁이씨는 기분에 따라 진짜 할머니 음성으로 ‘예-에~’. ‘ 그래유 ~’ .’할머니 힘들어유~’한다.
아마 스스로 보호받고 싶을 때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그 이유는 주로 나에게 사소한 부탁을 할 때만 할머니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물좀 줘유.’
‘할머니 의자 좀 꺼내줘유.’
그러고보면 혁이씨는 작고하신 본인의 엄마.
나에게는 외할머니를 이야기할 때 꼭 ‘엄마의 엄마’라고 하지 않지 않는다. ‘그래 , 엄마의 엄마는 너무 길긴 하지.’
그렇지만 또 ‘너의 외할머니’ 부를 수도 있는 데 꼭 내가 외할머니를 부르듯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항상 ‘외할머니’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라고 불러도 되는데 말이다.
하루는 내가 혁이씨를 할머니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혁이씨를 할머니라 불러서 ‘내 엄마’라는 존재가 이제 ‘아줌마에서 아주머니에서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음을 인지하기 위함이다.
둘은, 혁이씨가 아프다는 것에서 오는 나의 슬픔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고싶은 회피의 마음이다.
호칭이라도 약간의 거리를 둬야 조금은 덜 슬플것만 같기 때문이다.
결국 영원할 것 같은 엄마라는 한 사람도 영원하지 않고 세월을 피할 수 없고 나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기억하기 위함이다.
혁이씨를 엄마라 부르면 왠지 가슴이 미어져서 기어이 엄마를 할머니를 만들어버리는 퉁명스런 딸이다.
하지만, 가끔은 엄마도 ‘할머니’라는 호칭 뒤에 숨어, 힘들다고 말하거나 투정을 부릴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겨본다.
우리집 할머니는 이런 내 마음을 알까?
우리집 할머니도 본인이 할머니라 불릴 날이 올지 알았을까.
한 사람으로 수많은 호칭들을 받아내며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은 소소하고 위대하고 때로 하찮고 대체로 사랑스럽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싶은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인생은 생각대로 흐르지 않는 법이지만.
합가 이후 어느 날, 습관적으로 혁이씨를 할머니라고 하다가, 우리집 최씨 아저씨 내 남편에게도 모르고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나 할아버지 아니여!~’하는 우리집 최씨 아저씨의 말에 아차. 한다. 그래 할아버지면 안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