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둘기 Oct 24. 2022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무산된 소금빵 픽업과 혁이씨의 장애인 등록증 발급기1

퇴근 30분 전이었다.

매일 업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은행 이체 업무.

‘마지막 피날레를 완벽하게 장식하고,퇴근길에 소금빵 하나를 먹으며 집에 오리라! ‘는 들뜬 포부를 가지고 겉옷을 골랐다.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나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 데리고 올거야’라고 찬 공기가 미리 언지를 하는 것 같은 날이다.

입으면 복슬 강아지(아니고 개)가 되는 마법을 가진 목부터 발목까지 오는 플리스를 걸치고 길을 나섰다.


빵집을 지나 은행에 갔다가 업무를 보고 다시 소금빵을 가지러 돌아오는 루트였다. 평소처럼 걷던 계단을 걸어 내려가던 차에 .. 아 차차!!

움푹 파진 깨어진 계단을 보지 못하고 그 깨어진 턱에 넘어져버렸다. 나의 왼쪽 발목은 육중한 나의 몸무게를 실은채 삐걱했고, 오른쪽 발목도 삐덕. 그와중에 무게중심은 챙겼는지 앞으로 고꾸라지지않고 다음 계단으로 점프해서 앉아버렸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던 동네 아주머니도 같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셨다. ‘어머머!! 괜찮아요?!’ ‘좀 앉아봐 여기. 아유. 맨날 상가에다 이 계단 고쳐달라그러는데도 안고쳐줘! 여기서 많이 넘어져. 많이 다친거아니야? 여기 좀 앉았다가 추스리고 가요.!’

‘그런가요? 흑..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마치고 나는 발목을 끌어안았다.


비록 가볍게 다친 편이었다. 걸을 수 있었다.

고맙구나 발목아. 내 무게를 버텨줘서.

갑자기 삐어서 인대가 놀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냥 무시하고 집에 가기엔 범상치 않는 통증. 발목이 금새 부어올랐다. 어찌저찌 근처 은행에 절뚝거리면서 도착해서 마지막 업무를 이체처리하고 정형외과에 갔다.


갑작스런 맨발 오픈. 준비되지 않은 내 발 상태에 엄지발가락을 자꾸 꼼지락 거리게 된다. 왜인지 내 발을 빤히 들여다보는 사람 앞에서 맨발을 오픈하는 것은 조금 창피스럽다.

잠시 아픔보다 부끄러움이 앞서는걸 보니 그리 심각하진 않은 것 같다.


엑스레이 결과, ‘원래 오른쪽엔 아킬레스건염이 있는데 안아프셨어요? 치료하셔야 될거같아요. 왼쪽은 아시다시피 삐어서 인대가 놀라서 부었습니다. 심각한건 아니지만은, 이주동안 발목보호대 착용하시고 생활하세요. 최대한 움직이지 마시구요. 약 드시고 물리치료 받으러 오세요.’


갑작스레 삔 발목과 무산된 퇴근길 소금빵.

물리치료를 끝내고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제 봤던 그 초록불이 아닌 것 같다. 삐그덕대는 내 발목은 자꾸만 초록불의 발목을 잡는다.

어제 걷던 길이 오늘 걷던 길과는 다르게 너무 길게 느껴진다.

보호대만 차고 걷는데도 ‘횡단보도의 신호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구나.’싶었다.


요새 휠체어를 끌거나 보행기를 가지고 엄마인 혁이씨와 동네에 짧은 산책을 할때면 ‘초록불 이렇게 짧았나!?’싶은 생각이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빨간 불과 기다리고 있는 차들 앞에 쪼달리는 마음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빨리가야된다고 재촉만 하는 어제의 나쁜년 이었다.

오늘도 나는 그리 친절하지 않지만 발목이 삐어버린 오늘의 내가 혁이씨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겠다. 아 나 진짜 나쁜년이었구나. 빨리 갈수 없는거 알면서도 빨리 가야된다고 했으니.


나에겐 두 명의 지체장애인 친구가 있다.

지금은 운전도하는 아주 멋진 내친구와 나는 대학생때 자주 길을 걷곤 했다.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걸었을 때 우리가 했던 말은 항상 ‘우와 무사히 건넜다’ ‘다행이다’였다.

횡단보도 하나 건너는데도 ‘다행이다’라고 안도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고 나면 손에 축축히 배어있던 친구의 땀의 의미를 잘 몰랐다.


내 친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속도는 빠르지만 발이 작고 몸이 작아 횡단보도 앞에서 손을 들고 건너야하는 아이들을 옆으로,

다리는 걸으시는데 팔만 뛰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어르신이 되겠지.

빨간 불과 대기한 차들의 눈치를 보며,

차 안에서 ‘아 저 늙은이 언제가’ 혹은 ‘에요 어르신 빨간불인데..’ 이런 저런 목소리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서

손을 들고 최대한 빨리 가려고 하는 그 어르신.


어쩌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가 느린 아이들이 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대한 느즈막한 나이에 느려지고 싶어서 간간히 열심히 뛰고 등산을 하지만 때로는 그런 바램들이 나를 비웃는 날도 올 것이다. 계단에서 삐그덕했다고 보호대를 차버리게 된 오늘처럼, 마음과 같지 않은 날들이 올 것이다. 그래서 팔만 열심히 달리고 계시는 어르신과 신호등의 초수와 횡단보도의 평탄함은 나에게 남일이 아니다.

다시 잘 걷게 된다면 또 금새 까먹어버리겠지.

운 좋게 발목 인대만 늘어난 자의 궁시렁거림이다.


근 두달 간

엄마 혁이씨는 대학병원에서 통원 재활치료를 받으며

몇가지 테스트를 거쳤다.

장애 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테스트이다.

테스트 결과, 병원에서는 혁이씨에게 장애인 등록증을 발급 받을 수 있도록 여러 서류를 주었다.

장애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서류를 받는데도 몇만원이 든다.

조만간 나는 서울에 가서, 혁이씨네 집 근처 주민센터에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목요일이면 혁이씨를 휠체어로 데리고 재활치료도 가야하는데, 빠른 시일내에 내 발목이 나아지기를 기도하는 날이다.


혁이씨와 내 지체장애인 친구, 농인인 시댁 어르신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등록증이라고는 주민등록증 밖에 없던 사람에게도, 다른 등록증이 생기는 법이다.

누군가는 차를 타고 움직이고 누군가는 걸어서 움직이고 누군가는 보행기를 끌고 움직이고 누군가는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날들 속에서 모두가 각자 안온하기를 바래본다.



이전 10화 할머니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